회색 담장 아래 피어난 아이들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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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동안 굳게 닫혀 있던 철문,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 가던 공간. 충남 예산군 예산읍 창소리에 자리한 옛 충남방적 부지는 오랜 세월 지역 주민들에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곳'이었다. 한때는 지역 경제를 이끌던 산업화의 상징이었지만 공장 가동이 멈춘 뒤에는 높은 담장과 녹슨 철문, 무성한 잡초만 남았다. 어둡고 음침했고, 주민들에게는 그저 지나치는 풍경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난 22일 찾은 충남방적 담장 앞 풍경은 사뭇 달랐다. 초여름 햇살 아래 회색 콘크리트 담장을 따라 형형색색 꽃화분 수십 개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붉은 꽃과 노란 꽃, 보랏빛 꽃들이 무채색 담장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담장 위에는 아이들이 그린 꽃 그림도 걸려 있었다. 삭막함 대신 생기가, 적막함 대신 웃음이 피어나고 있었다.
이 작은 변화의 주인공은 예산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이다. 센터를 이용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신례원초등학교 학생들이다. 매일 학교를 마치고 센터로 향하는 길목에 충남방적 담장이 있다. 오래 방치된 폐공장 주변은 아이들에게도 반가운 공간이 아니었다. "길이 좀 무섭고 삭막해요." 아이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황선옥 센터장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냥 흘려듣지 않았다. "아이들이 매일 지나는 길인데 잡초도 많고 분위기도 어두웠다"며 "저녁에는 주민들이 산책하는 길이기도 해서 조금이라도 밝고 예쁜 공간으로 바꿀 수 없을까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충남방적 담장 가꾸기' 프로젝트다. 처음 이야기가 나온 것은 지난해 가을이었다. 어떤 식물을 심을지, 어떻게 꾸밀지,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지 고민이 이어졌다. 가장 큰 문제는 물이었다. 담장 주변에는 급수시설이 없었다.
그러나 뜻밖의 곳에서 해결책이 나왔다. 담장 맞은편에서 꽃가게 '아름다운 꽃동산'을 운영하는 주민이 흔쾌히 수도 사용을 허락한 것이다. 센터는 자체 예산으로 긴 호스를 구입해 연결했고, 꽃가게 사장은 물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물세 대신 수박 한 통 사오면 되지"라는 사장의 농담 섞인 한마디에는 아이들을 향한 따뜻한 응원이 담겨 있었다. 이같은 지역 주민의 작은 선의는 아이들의 꿈을 현실로 만드는 마중물이 됐다.
작은 행복 심는 고사리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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