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맞아? 170년 간 점점 커진, 도심 속 거대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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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등석.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황등면에서 나는 돌이다. 예로부터 화강암으론 우리나라에서 늘 첫 손에 꼽혔다.
황등석은 밀도가 높고 조직이 단단한 데다 철분이 거의 들어있지 않아 오랜 세월 비바람을 맞아도 색이 변하지 않고 은은한 회백색을 띈다. 무려 1400년 세월을 견뎌낸,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석탑으로 꼽히는 익산 미륵사지석탑도 황등석으로 쌓아 올렸다.
청와대 영빈관을 떠받치는 높이 13m, 둘레 3m에 달하는 거대한 돌기둥도 황등석을 깎아 만들었고, 국회의사당과 대법원 청사 그리고 독립기념관 등 나라의 권위를 드러내는 기관들을 지을 땐 여지없이 이 황등석을 썼다.
황등석으로 이뤄진 단단한 돌산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파내려 가기 시작한 건 조선 말기인 1858년으로 알려졌다. 어느덧 17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깊이 100m에 달하는 깎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바닥 너비만 축구장 9개를 더한 것 만큼 넓다.
최근 3년간의 준비 끝에 석산 꼭대기에 앉아 까마득하게 파인 절벽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 카페가 들어섰다. 절벽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 사이 거리는 300-500m, 바닥까지는 100m니 그야말로 아득하다. 앞으로 길어야 4년, 더는 돌을 캘 수 없게 되면 지금은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이 거대한 공간은 '황등석산 문화예술공원'으로 거듭나게 된다.
인간이 함부로 파헤친 뒤 자칫 흉물로 버려질 뻔한 돌산이 새로운 쓸모를 찾게 된 것. 돌산에게도, 인간에게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황등에 가면 꼭 황등시장을 찾아 '황등 육회 비빈밥'을 맛봐야 한다. 무거운 돌을 다뤄야 했던 석공들이 빠르게 기운을 되찾을 수 있도록 날고기를 듬뿍 얹은 밥을 미리 비벼 내놓았던 데서 '비빈밥'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시간의 흔적이 곳곳에 새겨진 황등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황등면은 이렇듯 시간의 흔적이 깊이 새겨진 고장이다. 돌의 흔적 말고도 물의 흔적과 기차의 흔적이 있다.
황등엔 황등호라는 호수가 있었다. '호수의 남쪽'이란 뜻의 '호남'이 가리키는 호수가 바로 이 황등호라는 이야기도 있을 만큼 호수는 크고 또 중요했다.
둑을 쌓아 물을 가뒀다는 뜻에서 황등제라고도 했는데, 조선의 문물을 기록한 백과사전 <동국문헌비고>(1770년)에선 이 황등제를 김제의 벽골제, 고부 눌제와 더불어 '국중삼호(國中三湖)'로 꼽는다. 또 유형원은 <반계수록>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이들(황등제, 벽골제, 눌제)은 한 지역에 크나큰 이익을 주는 수리시설이므로 국력을 집중하여 축조해야 한다. 이 세 제언(둑)이 제대로 유지된다면, 노령산맥 입구 지역은 영원히 흉년이 없을 것이며 이는 곧 국가 전체에 만세의 이익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조세의 대부분은 호남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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