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앉았다가도 결국 일어나... 우리 헌정사 닮은 남중생들의 '제헌절런'

제헌절(7월 17일)을 하루 앞둔 16일 아침 7시 30분, 영성중학교 체육관 청람관에 열다섯 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장맛비를 잔뜩 머금은 습한 공기가 체육관 안까지 밀려들어 이마에 땀이 배는 아침이었다. 원래는 운동장을 달릴 계획이었지만, 무덥고 습한 날씨 탓에 실내로 코스를 옮겼다. 아이들은 조끼를 입고, 가슴에 배번을 달았다. 그런데 그 번호가 조금 특별했다.
마라톤 대회에서 배번은 저마다 다르다. 그 숫자 하나로 기록이 남고, 순위가 갈리고, 한 사람의 레이스가 증명된다. 7년째 크고 작은 대회를 뛰어 온 러너로서, 나는 완주하면 가장 먼저 배번부터 떼어 사진으로 남긴다. 그 번호 안에는 그날의 내 고통과 환희가 고스란히 박혀 있으니까. 그런데 이날 우리 아이들의 배번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0717. 나만의 번호가 아니라 우리의 번호였다. 순위를 가르는 숫자가 아니라, 한마음으로 묶이는 숫자. 아이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각자의 기록을 겨루는 날이 아니라, 우리가 같은 방향을 향해 함께 달리는 날이다."
역사를 달리는 아이들
<피스메이커스>는 이름 그대로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우리 동아리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날을 골라, 그 의미를 공부하고 또 몸으로 달리며 되새긴다. 4월 3일에는 제주 4·3 사건을 기억하며 4.3km를 달렸고, 5월 18일에는 5·18 민주화운동을 기억하는 교내 캠페인을 열었으며, 6·10 민주항쟁 기념일에는 민주화운동기념관을 찾아 역사체험을 했다. 그리고 제헌절, 우리는 헌법을 달리기로 했다. 거리는 7.17km. 제헌절의 날짜를 그대로 달리는 거리로 옮겨 왔다.
달리기 전, 아이들과 제헌절이 어떤 날인지부터 찬찬히 짚었다. 제헌절은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헌법이 처음 세상에 공포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제헌 국회가 이 날짜를 고른 데에는 뜻이 담겨 있다고 전해진다. 조선왕조가 문을 연 날이 음력 7월 17일이었는데, 새 공화국의 헌법을 옛 왕조의 건국일에 맞춰 양력 7월 17일에 공포했다는 것이다. 개천절이 그렇듯, 음력의 날짜를 양력으로 옮겨 역사의 연속성을 날짜에 새긴 셈이다.
그런데 이 뜻깊은 날은 오랫동안 우리 곁에서 조용히 잊혀 갔다. 3·1절·광복절·개천절·한글날과 함께 5대 국경일에 속하면서도, 2008년 주 5일제가 자리 잡으며 제헌절만 공휴일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나라의 뼈대인 헌법을 기리는 날이, 정작 달력에서는 검은 숫자로 남아 여느 평일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 올해, 제헌절은 열여덟 해 만에 다시 '빨간 날'로 돌아왔다. 헌법의 가치와 국민주권의 정신을 되새기자는 취지에서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헌법을 달린 이 아침은, 되찾은 첫 제헌절을 바로 하루 앞둔 날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헌법 제1조를 소리 내어 함께 읽게 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짧은 두 문장이지만, 우리가 오늘 왜 달리는지가 그 안에 다 들어 있었다.
"초반에 다 쓰면 멈춘다" 페이스가 완주를 만든다
준비 운동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이돌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시작했다. 쿵쿵대는 비트에 몸이 풀리자, 아이들은 한 줄로 나란히 서서 체육관을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대열은 오래가지 않았다. 몇 바퀴 지나자 한 줄이 두 줄이 되고, 두 줄이 세 줄로 흐트러졌다. 숨이 턱까지 차 뒤처지는 아이가 생겼고, 급기야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어깨를 들썩이는 아이도 나왔다.
나는 출발 전부터 몇 번이나 당부했다. "처음부터 전력으로 달리지 마라. 초반에 힘을 다 써 버리면 금세 지쳐서 멈추게 된다." 7년을 달리며 몸으로 익힌, 러닝의 가장 기본적인 진실이다. 페이스를 지키는 사람만이 끝까지 간다. 하지만 열다섯의 혈기는 '페이스'라는 말을 좀처럼 듣지 않는다. 출발과 함께 몇몇은 있는 힘껏 앞으로 튀어 나갔고, 예상대로 몇 바퀴를 못 버티고 벽에 부딪혀 뒤로 처졌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오랜 세월 달리며 되뇌어 온 러너들의 오래된 격언 하나를 소개한다.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그 아픔에 무너질지 아닐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달리기란 결국 그 선택을 몸으로 연습하는 일이다. 다리가 무거워지고 숨이 가빠 오는 순간, 여기서 멈출 것인가 한 발을 더 내디딜 것인가를 매 순간 고르는 일. 나는 지친 아이 곁으로 다가가 나란히 속도를 늦추며 말했다.
"천천히. 멈추지만 않으면 돼."
우리 헌정사도 오버페이스와 회복의 반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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