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살아 남은 왕후가 보내는 서늘한 위로

자꾸만 곱씹어 보는 책 제목 <영영이별, 영이별>... 이별을 꾸미는 부사 '영영'은 독특한 리듬감으로 애절한 여운을 남긴다.
당신과 내가 영영 이별하였다 하여 영영 건넌 다리라고 부른답니다 (...) 영이별 다리, 영영 이별 다리... 232p
'영영'은 단종과 정순왕후가 첫 이별의 장소에서만 세 번, 꿈속에 나타난 단종에게 마지막 이별을 예감하며 "이대로 등 돌려 뒤돌아서면 일말의 기억마저 영영 잃어버릴 듯하여..." (238p) 여기에 한 번 더 썼다. 무심코 넘겼던 페이지를 다시 되짚어보자, 의외의 이름에서 '영영' 이 한 번 더 발견됐다.
엄흥도는 영영 사라졌지만, 그의 붉은 마음만은 사라지지 않았으니... p.82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만났던 엄흥도를 소설에서 마주치니 더욱 반가웠다. 영화를 보며 느꼈던 먹먹한 감동이 소설을 읽으며 그 장면들과 연결되어 따뜻한 연대감으로 이어졌다. 소설에서 엄흥도가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수습했던 일, 단종 무덤 터가 된 곳의 기이한 사연이 자세히 나온다.
동강에 버려진 당신의 주검을 모셔 장사 지낸 후, 주위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먼 곳으로 도망을 갔다는 영월의 호장 (戶長) 엄흥도가 그의 식솔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감읍하고 싶습니다. 그것으로 그들이 겪은 온갖 어려움과 고통을 보상할 수 있다면 마땅히 무릎이라도 꿇고 싶습니다. 79p
정순왕후가 엄흥도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절절하다. 그 간절한 염원은 200여 년이 흘러 이루어진다. 숙종 때 단종과 사육신이 복권되면서 엄흥도에게 좌랑 관직을 추증했다. 고종 13년에 '충의공' 시호를 내렸다.
'영영'하다는 건, 이별의 슬픔과 개인의 비극에만 멈춰 있지 않았다. 역설적으로 '영영' 떠났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오히려 '영영' 기억되었고, 지우려 했던 이름은 역사에 영원히 기록됐다.
청령포에서 동망봉으로 이어지는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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