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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교육 시대 지방의 일자리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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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교육 시대 지방의 일자리 만들기
한국인들은 해방 이후 열심히 이촌향도를 해 왔다. 서울·수도권 사람들은 이촌향도를 으레 '시골에서 서울로'라고 읽지만, 역사적 현상은 달랐다. 사람들이 서울로만 향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은 북상하지 않고 동진하여 동남권으로 향했다. 두 갈래 물결이 있었다.
첫 번째는 경공업이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주인공 오애순의 큰아버지는 애순이더러 부산의 섬유·신발·가발 공장으로 가라고 압박한다. 마산의 한일합섬, 부산이나 대구의 섬유업체들은 1960~1980년대 젊은 여성 노동자들을 빨아들였다. 서울에 평화시장 전태일과 여공의 이야기가 있다면, 마산에는 전국 팔도 소녀들이 고향 흙으로 조성한 '팔도 잔디'의 사연이 있다.
본격적인 동남권 이주를 만든 두 번째 흐름은 1973년 중화학공업화다. 포항·울산·거제·창원·광양·여수에 포스코를 시작으로 자동차·조선·석유화학·방산 사업장이 들어서면서 전국의 청년 남성들이 산업도시로 몰려들었다. 성실하게 일하면 "쨍하고 해 뜰 날"이 올 것이라는 기대였다. 중화학공업화 이전에는 공대를 나와도 할 일이 없었지만, 이제는 공고·전문대 출신 기능인력 모두가 현장에 빠르게 투입됐다. 당시 과기처 보고서에는 인원 부족 타개가 가장 시급한 사안으로 등장한다. 국방만큼 산업화가 중요하다 보니 병역특례 혜택도 많았다. 공고를 졸업하고 곧바로 현장에 투입된 청년이 40년씩 회사를 지켰고, 직업훈련소에서 몇 달 교육을 받은 이들도 곧바로 1인분을 해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처우가 개선되면서 고임금·높은 근속·성과급·복지를 누리는 '중공업 가족'의 신화가 완성됐다. 상경한 사람들과는 다른 경로로 양질의 제조업 일자리가 창출됐고, 그게 지방 도시 성장의 중요한 동력이었다.
그런데 지금 1970년대식 방식은 가능하지 않다. 대기업이 고용하려는 인원의 구성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2024년 현대자동차그룹은 2026년까지 8만 명 고용을 약속했는데, 6만7천 명이 사무직 또는 기술직·연구개발직이었다. 나머지 1만3천 명도 생산직 신규 채용이 아닌, 정년퇴직자의 촉탁 재고용이었다. 많은 지자체들은 국가산단과 대기업 공장 유치로 생산직 고용을 창출하려 하지만, 청년들은 내일채움공제나 정주 보조금을 얹어도 양질의 일자리로 여기지 않는다. 청년들은 대기업 원청 정규직이 아니라면 공장 대신 물류센터 버스를 탄다. 공장·조선소 알바가 흔했던 창원의 청년들도 이제는 제조업체에 가지 않는다. 대학진학률이 76%에 달하는 시대에 생산직을 권하는 건 눈높이 문제가 아니라 존재론적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첨단'을 아무리 붙여도, 원청 정규직 일자리가 아닌 이상 청년들은 거부할 수밖에 없다. 지방의 일자리 문제는 결국 어떤 종류의 일자리를 만드느냐의 문제다.
현재의 노동시장을 고려할 때, 지역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혁신도시의 공공기관 이전보다 제조 대기업의 연구소, 연구개발·엔지니어링 기능을 통합적으로 갖춘 사업장, 그리고 창업기업이다. 그런데 민간기업을 지방으로 강제로 보낼 수는 없다. 시장경제가 성숙한 지금, 기업이 자발적으로 들어오게 만드는 혁신생태계라는 인프라가 먼저 갖춰져야 한다. 1970년대 고속도로가 산업화의 전제 조건이었듯이. 활성화된 산학연 연구 공동체, 세상에 없는 제품을 만들어 사업을 해보겠다는 창업가들의 네트워크, 그걸 뒷받침하는 선진화된 금융과 행정이 필요하다. 그냥 부지를 인허가 해준다고 될 일이 아니라 지역 사회의 진화가 필요한 이유다. 구색을 갖출 수 있는 규모의 경제를 고민하다 보니 행정통합과 메가시티, '서울대 3개'를 언급하게 되는 것이다.
올해 2월, 현대차그룹이 전북 새만금에 9조 원 투자 협약을 맺었다. AI 데이터센터·로봇 공장·수소 클러스터를 묶은 이 협약은 정부의 5극3특 전략과 정확히 연동됐고, 정부는 이를 국토 대전환의 첫 선도 모델로 공식화했다. 껍데기로서의 공장 유치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규제 혁신과 기업 기술투자가 맞물린 복합 클러스터다. 이 구조가 바로 지방에 필요한 '빅 딜'의 형태이며, 서울·수도권으로만 향하는 이촌향도의 흐름을 구부리는 열쇠다. 지식기반 일자리의 구상 기능을 각 거점에 집약해 분산하는 일, 이제 제 방향에 서긴 했다. 속도와 밀도 있는 조율이 관건이다.
◆ 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정치학, 문화인류학을 거쳐 공학 박사(과학기술정책 전공)를 받았다. 제조업, 엔지니어, 산업 생태계에 대해서 현장 연구를 수행 중이다. 저서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2019),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202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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