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전, 궁정 화가가 그린 괴수, 웅장한 감동있네

'프란시스코 고야'의 대형 전시인 <스페인의 거장 F. 고야: 이성이 잠들 때, 괴물이 깨어난다>가 UNC 갤러리 주최로 한국에서 처음 열렸다. 그의 예술적 크기로 볼 때, 그는 지속적 연구 대상이 되었다. 갤러리 측은 그의 대표적 판화 작품과 '리블로 컬렉션'에서 제공한 전시 문헌, 프라도미술관 등 여러 기관의 연구 자료를 참고해 이번 전시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고야가 스페인 왕실의 총애를 받았던 1786년 궁정화가 시절부터, 동판화 특유의 거칠고 생생한 질감이 살아있는 1797년 <카프리초스(변덕)> 연작(80점), 그리고 1820년부터 시작된 마지막 역작 '검은 그림' 시절까지를 총망라해 총 6부로 구성되었다.
궁정화가에서 '근대미술' 선구자로
고야(1746~1828)는 1746년 스페인 '아라곤'에서 금박 세공사인 아버지와 하급 귀족 가문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르네상스 미술을 연구하고 예술적 견문을 넓혔다. 그는 1773년 27세의 나이로 결혼했고, 1786년 스페인 왕실의 총애를 받아 '국왕소속화가'가 되었고 1799년에는 '수석 궁정화가'가 되었다.
당시 연봉 1만 5천 '레알'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1792년 원인을 알 수 없는 중병을 앓은 뒤, 1793년 청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궁정화가의 지위는 유지했지만, 이를 계기로 세상과 단절된 채 끔찍한 고립 속에서 타인을 향하던 시선을 거두고 자신의 깊고 어두운 내면과 마주해야 했다.
역설적으로 이 비극은 그를 근대미술의 선구자로 이끄는 전환점이 되었다. 르네상스 미술이 인간의 기하학적 신체의 조화와 질서를 찬양했다면, 고야는 화려한 궁정의 불빛 이면에서 인간의 탐욕을 꿰뚫어 보았고,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무너지는 인간의 광란을 포착했다. 그는 이성이 무너진 자리에 끔찍한 '괴물'이 탄생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이런 관점은 근대미술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됐다. 그는 고전적 틀을 과감히 부수고, 억압된 인간의 욕망을 분출시키며, 내적 감정을 조명하는 '근대주의자'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작가의 주관적 감정을 중시하며 과거와 달리 권력자를 이상화하지도 않았다.
그는 사물을 미화하지 않고 종교적 진리를 추구하던 기존 미술의 관행을 버리고, 인간의 보이지 않는 깊은 심연을 주체적 감정으로 캔버스에 쏟아냈다. 예술적 풍자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광기를 극적으로 시각화함과 동시에, 인간의 본성과 권력 구조를 성찰하고 계몽을 촉구했다.
그는 초기 화풍과 달리 세밀한 형태보다는 거칠고 자유로운 붓질로 질감과 분위기를 강조했다. 이런 화풍은 훗날 인상주의와 표현주의의 모태가 되었다. 그는 이렇듯 고전과 근대미술의 과도기를 넘나들었기에 '마지막 고전주의자이자 최초의 근대주의자'로 불리기도 했다.
이탈리아 미술사학자 리오넬로 벤투리(L. Venturi)는 저서 <근대화가>에서 "근대 회화는 고야로부터 시작되었다"라고 평했으며,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도 자신의 시 <등대>에서 고야를 단순한 화가가 아닌 '알 수 없는 것으로 가득 찬 악몽'을 형상화하며 억압된 욕망과 무의식을 펼친 예언자라고 칭송했다. 고전 미학이 붕괴한 자리에 낯선 '추(醜)의 미학'을 세운 셈이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이성 중심주의가 낳은 거대한 폭력과 억압의 구조를 <광기의 역사>를 통해 고발했는데, 고야는 그보다 160여 년 앞서 회화 속에 마녀와 악마를 등장시켜 이들의 위험성을 폭로했다. 우리 내부에 도사린 심연의 어둠을 낱낱이 해부했다.
이성이 잠든 곳에 태어나는 괴물들
이번 전시의 백미는 단연 1799년에 발표된 <카프리초스> 동판화 연작이다. 고야가 18세기 말에 발표한 이 연작의 제목은 '변덕'을 뜻한다. 인간의 맹목성을 마녀, 고블린 등 환상적 생물에 빗대어 비꼬았으며, 스페인 사회의 미신과 귀족 및 성직자의 부패를 풍자해 당시로서는 유례없이 독창적이고 획기적인 예술 세계를 펼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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