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를 발칵 뒤집은 노래를 아십니까

지성수(78) 목사는 부천 지역 1980~1990년대 시민운동의 산증인이다. 빈민 운동가, 민주화 운동가, 문화비평가이자 저술가 그리고, 시드니의 택시 기사이자 이민자 사역자였던 지 목사는 1997년 부천을 떠나 시드니에서 택시 운전사로 15년간 일하다가 2021년 원대 복귀했다. 현재 공익 단체와 활동가 등을 도우면서 진보 종교인들의 유튜브 모임 '신신사'(信神사)를 운영하고 있다.
문화비평가이자 칼럼니스트인 그는 <옛날 하나님 요즘 하나님>(예루살렘·1991년) <공부 못하는 아들에게>(예루살렘·1992년) <슬픔도 힘이 된다>(나눔터·1994년) <교회야 교회야 뭐하니>(예루살렘·1994년) <뒤집어 보는 성서이야기>(예루살렘·1996년) <비뚤어진 영성>(예루살렘·2007년> <시드니 택시 기사의 문화 관찰기>(생각비행·2016년) 등 8권의 저서를 펴냈으며 현재는 페북과 유튜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와 함께 <빈들의 소리>라는 불온 문서를 10년간 발행했다. 독재정권의 언론통제 하에서 발간된 <빈들의 소리>는 성서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빈민운동과 민주화운동, 지역운동과 시민운동 등 주류 언론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뉴스와 주장을 담았다. 지하 유통망을 통해 퍼져 나간 <빈들의 소리>는 국내뿐 아니라 국외까지 전해졌으며 이 불온 문서를 읽다 들킨 군인들은 보안사에 끌려가기도 했다.
1. 목회자의 길
"목사 안수받기 위해 선서할 때 나만 하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목사가 될 자격이 있는가? 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회를 직업으로 택했으므로 목사 안수받는 걸 피할 수 없었지만 나는 이미 '우찌무라 간조'의 제자였기에 기성교회 제도에 무게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 후 나는 우찌무라 간조의 가르침을 따라 직업 목회자의 길을 떠났습니다. 목사가 교단을 떠난다든지 혹은 목회를 못하게 된다는 것은 사형선고를 받는 것과 같은 현실 앞에서 불안했던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건국대를 중퇴한 후 서울신학대를 졸업한 그는 목사 안수식에서 목사 선서를 하지 않았다. '우찌무라 간조'(内村鑑三 1861~1930)라는 일본 기독교 사상가를 스승으로 모셨기 때문이었다. '무교회주의자'(無敎會主義者)였던 '우찌무라 간조'는 "기독교 신앙의 유일한 근거는 성서일 뿐이며, 교회와 그 관습은 기독교를 담아내는 껍데기"라고 했다. 종교인이자 독립유공자인 김교신(1901~1945)과 재야 사회운동가 함석헌(1901~1989) 등이 '우찌무라 간조'의 영향을 받았다.
지 목사는 우찌무라 간조의 제자였지만 동시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었다. 신학생 시절에 결혼한 그는 농촌 미자립 교회와 서울의 빈민가에서 활동했으나 늘 생계 곤란에 시달렸다. 마침 종합상사를 하던 고교 동창의 요청으로 봉제공장 총무과장을 맡았으나 회사가 부도나면서 실업계 고교에서 교목'(校牧) 생활로 생계를 이어갔다. 허위와 위선을 싫어하는 그는 자신의 칼럼에서 '생계와 생존'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다.
"누가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큰 소리로 자신 있게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도 예수도 아니고 돈 버는 일이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예수는 나중에 만나도 되지만 오늘 돈을 벌지 않으면 당장 내일 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40년 전 신학생 시절,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서 농촌의 미자립 교회부터 목회를 시작해서 10년간 목회자로서 밥을 벌어먹었습니다."
그의 출생은 축복이 아닌 아픔이었다. 젖을 떼기도 전에 부모가 이혼하면서 양육과 돌봄을 받지 못한 그에게 가족은 십자가였다. 서른셋에 십자가 처형당한 청년 예수는 몰랐을 것이다. 십자가를 메고 넘어가던 골고다 언덕 못지않게 고통스러운 생존의 언덕, 처자식의 생계를 이고 지고 가는 가장의 십자가를 예수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생계의 창에 찔린 가장이 살아남기 위해 비루하고 비참한 삶의 십자가를 메야만 하는 비애를 예수가 헤아릴 수 있을까?
2. 거리 목사의 삶
"신학교 졸업생들 사이에는 농담으로 '당회'(堂會 목사와 장로가 모이는 회합으로 교회의 사무처리와 출교 등을 결정하고 감독, 일종의 이사회)가 있는 교회에서 목회하면 '별을 달았다'라고 표현합니다."
지 목사는 서른여섯에 교인 300명이 넘는 당회가 있는 교회, 자택과 자가용, 교목 시절보다 2배의 '사례비'(월급)에다 400%의 보너스를 받는 교회의 담임목사로 취임하면서 가정 평화와 생계 안정을 누렸다. 하지만 안정된 목회는 3년 만에 끝났다. 한 교인이 선물한 고(故) 리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라는 불온 도서를 읽으면서 월남전쟁이 미국의 침략 전쟁이라는 실상을 알게 된 것이다. 이 책을 쓴 리영희 선생은 박정희 유신정권에 의해 반공법 위반으로 2년간 옥살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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