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위에 핀 꽃, 순창 회문산 만일사

지난 17일, 교실 밖의 길동무 여행을 순창 회문산으로 떠났다. 앞서 지난 8일, 남원 용담사와 구룡계곡으로 길동무 사제동행 여행을 갔었다. (관련 기사 : 인생을 보상 받은 기분입니다)
여행 길동무들은 섬진강 천담 마을을 지나서 순창 구림면 회문산의 울창한 숲속에 자리한 회문산자연휴양림에 도착하였다. 이곳 휴양림의 비목공원에 6·25 양민희생위령탑과 회문산 역사관(구 빨치산 전시관)이 있다.
회문산의 무성한 숲속 비목(碑木) 공원에 '6·25양민희생위령탑'이 높이 서 있었다. 대한민국과 유엔, 6·25 참전 16개국의 깃발이 게양되어 이 공원을 지키고 있다.
매년 6월 25일에 순창군과 회문산 제전위원회에서 이곳에서 추모식을 올린다. '해원, 화합과 통일 기원 제21회 회문산 해원제'와 '조국을 위하여 바친 넋이여 고이 잠드소서!'의 추모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시비(詩碑)에 '어쩌다가 이 산하 허리가 동강 났는가' 글귀로 시작하는 '외로운 혼백을 위하여'의 시가 새겨져 있었다.
위령탑은 이 산하에서 벌어진 비극을 증언한다. 당시 이 땅에서 벌어진 빨치산 활동은 거대한 이념의 충돌 속에 있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민간인이 빨치산의 무장 투쟁과 군경의 토벌이라는 두 갈래 아래 희생되었다. 우리가 마주한 이 위령탑은 대립의 시대에 이름 없이 쓰러져 간 모든 무고한 생명을 기억하기 위한 약속이다.
위령탑 앞에는 여러 그루의 무궁화나무가 짙은 녹색 잎을 배경으로 무궁화 꽃이 피었다. 꽃잎의 색깔이 흰색이면서 꽃 중심부에 붉고 선명한 단심이 뚜렷한 백단심계 무궁화꽃이 인상 깊게 보였다.
울창한 편백 숲속 오솔길을 걸어서 '회문산 비목의 숲'을 찾아갔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 비목이 서 있고, 그 위에 얹힌 철모 하나. 6·25 전쟁 당시 격전지였고, 수많은 희생이 서린 아픈 역사를 노래하는 '비목' 노래 가사가 하얀 비석에 새겨져 있었다.
길동무 여행자 한 명이 비석을 한참 쳐다보다가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하며 천천히 노래를 불렀다. '비목' 노래의 선율이 푸르고 푸른 숲속으로 퍼져 나갔다.
회문산 역사관 앞에 서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이곳은 회문산 정상까지 2.1km의 지점으로 회문산의 깊숙한 곳이다. 견고하게 다듬어진 석재 외벽과 현대적인 유리창이 회문산의 자연 속에 자리 잡고 있다. 회문산 역사관에는 회문산의 풍수지리설, 항일의병활동, 갱정유도교의 발상지, 회문산의 천주교 성지 등의 역사적 사실이 전시되어 있다.
회문산 역사관이 자리한 장소는 한국전쟁 시기에 회문산 빨치산 부대 사령부의 터로 알려진 역사적인 공간이다. 회문산은 한국전쟁 전후 빨치산 활동의 핵심 거점 중 하나였다. 그 역사는 1948년 여수·순천 10·19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여수·순천의 제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지리산과 회문산 등지로 들어가 빨치산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전쟁 시기 1950년 9·28 수복을 전후하여, 퇴각하던 인민군 낙오병과 남로당 전북도당 세력이 회문산 일대에 집결하며 유격대를 조직했다. 당시 전북도당은 회문산 장군봉 아래 대수말에 사령부를 두고 활동하였다.
1951년 8월 무렵 회문산의 빨치산이 '조선인민유격대 남부군단(독립 제4지대)'에 편입되었다. 이후 회문산의 빨치산 세력은 지리산 등지로 이동하거나 토벌 작전으로 인해 비극적인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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