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1호' 이 사건, 재심 시작한다

9일 오후, 장맛비가 그치지 않았다. 오전부터 쏟아지는 비에도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며 매달 이어온 월례행동이 열네 번째 진행되었다. 참가자들은 우산을 쓴 채 발언과 시낭송, 노래 공연에 귀를 기울였다.
"국회프락치사건 재심 시작… 강제해체 진상규명 특별법에 힘 모아달라"
마이크를 든 이 사무총장은 국회프락치사건과 반민특위 강제해체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여러분, 국가보안법 첫 번째 사건이 무엇인지 혹시 아십니까? 이른바 국회프락치사건입니다. 국회프락치사건은 대한민국의 첫 번째 국가보안법 사건이면서, 동시에 첫 번째 간첩조작 사건입니다."
1948년 8월 15일 정부가 수립되자 제헌국회가 가장 먼저 착수한 일이 친일 청산이었다. 제헌헌법 제101조에 근거해 그해 9월 법률 제3호로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제정됐고, 10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옛 조선총독부 건물인 중앙청에서 출범했다. 본부 청사는 지금의 명동 롯데백화점 길 건너편에 있었다. 그리고 1949년 6월 6일, 이승만 정권은 무장 경찰을 동원해 반민특위를 아침에 습격했다.
"미군에 의해 간신히 유지되던 그들의 권력이 반민특위로 인해 하루아침에 날아갈 위기에 처했으니까요. 습격 얼마 전 여러분이 잘 아는 노덕술이 체포됐고, 최운하가 체포됐습니다. 이승만과 친일 세력들은 반민특위가 가장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반민특위를 파괴할 어떠한 명분도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유일한 무기가 있었죠. 무엇입니까? '빨갱이'입니다."
'반민특위는 빨갱이'라는 구호 아래 동대문운동장에서 관제데모가 조직됐고, 반민특위 요인들의 집에는 협박 편지와 돌덩어리가 날아들었다. 이 사무총장에게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당시 반민특위 조사관이셨습니다. 바로 박흥식 등을 체포했던 분이시죠. 어머니와 누나들의 증언에 의하면, 우리 집에도 괴한들이 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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