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 이런 곳이? 신선의 말이 남긴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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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오전 10시, 화개장터를 지나 쌍계사 초입에 이르자 길 양옆의 거대한 바위에 각각 '雙磎(쌍계)'와 '石門(석문)'이 새겨져 있다. 두 암각을 합쳐 '쌍계석문'이라 부른다. 처음에는 사찰의 입구를 알리는 표지처럼 보였다.
그러나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서니 이곳은 단순한 돌문이 아니었다. 마치 현실과 이상향을 나누는 경계처럼 느껴졌다. 중국 동진 시대 시인 도연명은 <도화원기>에서 복숭아꽃이 흐드러진 계곡 끝, 좁은 동굴을 지나 세상과 단절된 이상향 무릉도원을 만나는 이야기를 남겼다.
우리 선조들도 이런 이상향을 동천(洞天)이라 불렀다. 깊은 산속, 신선이 머무는 별 천지를 뜻하는 동천은 지리산에서는 청학동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졌다. 학이 날고 신선이 머문다는 청학동은 현실을 떠나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속 이상향이다. 쌍계석문은 바로 그 청학동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었다.
東國花開洞 壺中別有天
(동국화개동 호중별유천)
"동쪽 나라의 화개동은
호리병 속에 따로 있는
별천지와 같구나."
이 한 구절은 화개동의 풍광을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한 시구로 꼽힌다. '호중별유천(壺中別有天)'은 중국 도교에서 유래한 말로, '호리병 속에 또 다른 하늘이 있다'는 뜻이다. 현실 너머의 별천지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도연명의 무릉도원처럼 화개동을 신선이 머무는 이상세계로 바라본 옛사람들의 인식을 담고 있다.
이 시는 현대에도 널리 회자됐다. 2015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5 중국 방문의 해' 개막식 축하 메시지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며 "동쪽 나라의 화개동은 호리병 속의 별천지"라고 소개했다. 최치원이 노래한 화개동의 아름다움이 한·중 문화교류의 상징으로 다시 조명된 순간이었다.
또 다른 세계에 들어서다
실제로 쌍계석문을 지나 숲길로 들어서면 그 표현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계곡물 소리는 더욱 맑아지고 울창한 숲은 하늘을 덮으며 속세의 소음을 하나둘 지워낸다. 쌍계사에서 불일암, 불일폭포로 이어지는 길은 마치 또 하나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듯한 여정을 선사한다.
일주문과 금강문, 천왕문을 차례로 지나면 팔영루와 진감선사대공탑비, 9층석탑, 대웅전이 한 축으로 이어진다. 세 개의 문은 마치 터널이나 석굴처럼 속세와 불국토를 잇는 관문 같다. 문을 하나씩 통과할수록 마음은 고요해지고, 어느새 또 하나의 세계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 든다.
쌍계사에서 불일암을 거쳐 불일폭포까지 이어지는 2.5km 숲길은 천년 고찰의 역사와 선승들의 수행 흔적, 지리산 원시림이 어우러진 길이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수록 몸과 마음이 자연 속으로 스며든다.
이 길에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바로 청학동이다. '푸른 학이 사는 마을'이라는 뜻의 청학동은 예부터 우리 민족이 꿈꾸던 이상향으로 전해져 왔으며, 고려 문인 이인로(1152~1220)가 <파한집>에 기록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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