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만 믿고 이사 간 사람들이 당한 일... 진실 밝혀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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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인 용역업체를 동원하는 철거 작업도 분노를 일으키지만, 장밋빛 환상을 심어주며 자발적 이주를 유도하는 기만적인 철거도 공분을 낳는다. 김현옥(1926~1997) 시장 시절의 서울시가 주도한 한강 밤섬 철거 및 폭파도 기만적인 일이었다.
그로 인해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온갖 풍상을 다 겪은 밤섬 사람들이 당시 상황에 관한 진실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밤섬 출신 100여 명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 규명을 신청하고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가 16일에 있었다.
여의도 개발을 위해 밤섬을 폭파한 서울시
서강대교가 관통하는 밤섬은 여의도와 그 북쪽 마포구의 중간쯤에 있다. 지금은 자연적으로 복구돼 있지만, 이곳이 폭파된 것은 무장공비 청와대 습격 미수(김신조 사건, 1968.1.21.)와 북한에 의한 미국 푸에블로호 나포(1.23)로 인해 대한민국이 뒤숭숭할 때인 1968년 2월이다.
그달 11일 자 <조선일보>는 "한강 여의도 옆에 위치한 전설의 섬마을 밤섬(율도)이 근대화에 쫓겨 자취를 감추게 됐다"라며 "김현옥 서울시장은 10일 오후 3시 밤섬 폭파 작업에 첫 스위치를 눌렀으며, 이 섬은 오는 5월 말까지 이 땅 위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고 보도했다.
폭파 작업은 밤섬의 암석 부분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밤섬은 한강에서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됐다. 그랬다가 모래가 쌓이는 등의 자연적인 퇴적 작용으로 1980년대부터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
시각디자인을 가르치는 권명광(1942~2021) 홍익대 교수는 홍익대 재학 시절부터 밤섬에 자주 놀러갔고 교수가 된 뒤에도 그 주변의 도로로 출퇴근했다. 그는 1988년 7월 19일 자 <동아일보>에 "지금은 수면 위에 잡초만 드러낸 채 흔적만 남기고 있는 섬 아닌 섬 밤섬"이라고 썼다. 폭파 20년이 흐른 이 시점에는 밤섬이 그런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폭파 이전의 밤섬은 서울이면서도 서울 같지 않은 곳이었다. 1968년 2월 4일 자 <조선일보>는 "도둑이 없고 질병 없이 살 수 있다는 20세기 신비의 마을"이라며 이렇게 소개했다.
"이 모든 은총은 그들만이 모실 수 있는 부군신(府君神)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이곳 주민들은 지금까지 수도물을 모른다. 한강물을 그대로 떠다 밥을 지어 먹고 냉수로 마시지만 누구 한 사람 설사를 하지 않았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전기 대신 집집마다 부군등이라는 초롱불을 켜고 있다. 생섬('생업'의 오타)은 옛부터 내려오는 조선업. 5일 내지 일주일이면 싯가 4만 원짜리 목선 한 대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근년에는 경기가 없어 조그만 나룻배를 만들거나 도선공 또는 물고기잡이로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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