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대회에서 받은 책 한 권에 펼쳐진 2000년 역사
등산복 주머니에서 나온 책 다섯 권
4월 중순, 서울로봇고 운동장에서 AI로봇산업협회 주관의 '로봇인 등산대회'가 열렸다. 등산화를 신고 집결한 사람들 사이에서 한 참가자가 배낭에서 책 다섯 권을 꺼내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로봇 유니버스-자동인형에서 피지컬 AI 로봇까지>. KAIST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37년간 산업계와 연구기관에서 로봇을 연구해 온 조영조 전 ETRI 연구 전문위원이었다.
"로봇에 대한 꿈을 키워가는 학생들이 이 책을 통해 로봇의 과거를 이해하고, 더 넓은 미래의 유니버스를 설계하는 영감을 얻기를 희망합니다."
그의 말이 산바람에 흩어졌다.
나는 한 권을 교장실 책상에 올려두고 네 권을 도서관으로 보냈다. 책을 다 읽은 지금, 교장실에 남겨둔 그 한 권도 곧 서가로 보낼 것이다.
요즘 우리 학교 분위기는 들뜨다 못해 조금 어지럽다. 현대차그룹의 아틀라스가 CES 2026에서 보여준 퍼포먼스 이후 로봇 테마가 국내 주식 상승장을 이끌었고, 언론과 유명 유튜버의 취재 요청이 쏟아졌다. KBS와 <한겨레신문>이 학교를 보도했고, 교육부 유튜브의 '놀러온 카메라'와 유튜버 미미미누의 '전학왔습니다'도 촬영되었다. 전국 유일의 로봇 마이스터고라는 수식어가 이처럼 무겁게 실감된 적이 없었다. 그럴수록 나는 이 책이 그냥 보기 좋은 선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학생들이 올라서려는 이 산의 지형도 같은 책이다.
2000년 전 성수 자판기가 내게 말을 걸다
책의 첫 반전은 서기 1세기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작된다. 천재 엔지니어 헤론(Heron)은 사원 입구에 성수를 자동으로 배출하는 장치를 설치했다. 동전을 투입하면 레버가 기울어 밸브가 열리고 성수가 흘러나오는 구조, 오늘날의 자동판매기 원리다. 전기 한 방울 없이 오직 지렛대와 중력만으로. 저자들은 이 기계가 단순한 편의 장치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사제들은 신의 마법처럼 보이게 하려 했고, 기술은 그 욕망을 충실히 섬겼다.
책에는 또 하나의 반전이 있다. 18세기 프랑스의 발명가 보캉송(Vaucanson)은 루이 15세의 지원 아래 '피 흘리는 사람(L'homme saignant)'이라는 극비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인체의 순환계를 기계로 복제하는 것이 목표였다. 인공 혈관을 위해 남미 가이아나까지 원정대를 보냈던 그 집착은 오늘날 인공 장기와 디지털 트윈의 먼 선조다. 헤론의 로프 매듭 알고리즘은 현대 이진법 프로그래밍의 조상이다. 이렇게 책은 '기술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2000년의 시간을 통해 설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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