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준비 대신 바느질 하는 고3, 걱정은 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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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이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지독한 냄새가 있다.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어느 부분에서 지독하다라고 표현되는 것인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아마 대한민국에서 사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은 그 냄새를 거쳐 갔고, 거쳐가는 중일 테니.
대부분의 고3들은 무엇을 위해 이토록 대학 입시에 집착하는지, 가서는 뭘 할 건지 뚜렷하게 생각해보지 않는다. 아니, 그럴 틈이 없다. 무언가에 쫒기듯 땅만 보고 달리며 헉헉대는 이들에게 생각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대학에 가는 것을 간절히 바라고, 나의 목표를 위해 죽을 듯이 달려보는 경험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분명 진하게 다가오는 배움이 있을 것이고 그 배움이 거름이 되고 흙이 되어 미래를 밝혀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면? 모든 것이 나를 위한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면? 간신히 숨만 붙은 채 살아가는 인생에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한다면?
초4의 결심 '학교로 돌아가지 않을테다'
나도 '고3'이다. 대한민국에 살고 공부는 싫어하지만 노는 건 좋아하는 평범한 여고생이다. 한 가지 다른 고3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대안학교'에 다닌다는 것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남들보다 '센서티브' 했다. 친구들이 선생님에게 혼나면 나도 무서워했고 친구들이 울면 나도 울었다. 몸의 감각이 예민했고 사소한 일에도 깊고 섬세하게 생각했다. 초 예민 공감 능력을 가진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는 타인의 눈치를 끊임없이 살폈다. 정확히는 모든 것을 느끼고 싶지 않아도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나는 욕심도 많아서 힘든 부분은 숨기고 나의 센서티브함을 도구 삼아 철저한 모범생이 되려 노력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발표도 꼬박꼬박 잘하고 시험도 잘 보고 친구관계에서도 문제가 없는, 그런 전형적인 '문제 없는 아이'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다 일이 생겼다. 아직 그 많은 것들을 숨기기에는 한도 초과였던 것일까. 학교에 갈 수가 없었다. 속이 너무 안 좋고 공포가 밀려왔다. 출석 일수는 적어지고 집에만 있으면서 우울감이 심해졌다.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치료에 전념하던 나는 결심했다. "학교로 돌아가지 않을 테다." 사실 나는 아직도 당시에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정확히 알기 힘들다. 내 몸이 아픈 게 딱히 학교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초등학교 4학년의 나는, 무엇 때문에 학교로 돌아가기를 거부했던 걸까. 그렇게 이러저러한 고생을 하다가 '대안학교'를 알게 되었고, 나는 지금까지 쭉 대안학교에 몸담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에는 서울에 있는 작은 대안학교에서 익숙지 않은 대안교육을 피부로 느껴보았다. 제일 감명 깊은 기억은 첫 회의였다. 학생들이 직접 질문하고 답하며 주체적으로 회의가 진행되는 모습에 희열을 느꼈다. 나 자신이 짜여진 교육을 받고 친구들과 경쟁하는 학생이 아닌 주체적인 인간이자 한 명의 학교 구성원처럼 느껴지는 순간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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