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는 왜 불평등을 완화하지 못했나
한국의 불평등이 심각한 문제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누군가는 벤틀리를 몰고 타워팰리스에 살며 어린 자녀를 미국에서 유학시킨다. 반면 누군가는 중고 포터 트럭으로 자녀와 함께 택배를 배송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또 다른 누군가는 가족과의 연락이 끊긴 채 폐지를 주우며 쪽방에서 홀로 노년을 버틴다. 같은 대학 안에서도 현실은 다르다. 누군가는 등록금과 생활비 걱정 없이 학업에 전념한다. 반면 누군가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두세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채 졸업한다.
노동시장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노조가 있는 대기업의 정규직으로 일하고, 누군가는 노조 없는 중소기업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두 사람의 임금과 삶의 질, 그리고 미래를 설계할 기회는 크게 다르다.
경제적 불평등은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구별한다. 20세기 근대화는 귀속적 지위에서 성취적 지위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 우리는 다시 귀속적 지위가 삶의 기회를 좌우하는 사회로 돌아가는 듯한 모습을 목격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와 조부모의 자산과 교육 수준이 만들어내는 격차를 넘어서기 어렵다는 현실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불평등은 정치가 만든 결과다. 정책은 집단적 의사결정의 산물이며, 집단적 의사결정이 곧 정치이다. 유권자의 선호는 선거와 조직화한 이익집단을 통해 표출되고, 정치제도는 그 선호를 의석으로 바꾸어 승자를 결정한다. 그리고 승자는 조세와 복지,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소득과 부의 분배를 바꾼다. 결국 불평등은 정치의 산물이다.
반대로 불평등은 다시 정치를 바꾼다. 불평등이 심화할수록 정치는 점점 더 부유한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는 경향을 보인다. 민주주의 정부는 시장이 만들어낸 불평등을 조세와 재정, 사회정책을 통해 완화해야 한다.
말하자면 현대 민주국가는 '로빈후드'의 역할을 해야 한다. 1원 1표의 자본주의와 1인 1표의 민주주의가 공존할 수 있었던 원리이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임금, 소득, 자산 어느 지표를 보더라도 불평등은 꾸준히 확대해 왔다. 반면 정부의 재분배 노력은 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권에 머문다. 왜 그럴까. 한국 민주주의는 왜 불평등을 완화하지 못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시민과 유권자의 선호라는 수요 측면과 정당·정부의 정책 결정이라는 공급 측면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물론 두 측면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정치인들은 나 같은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라는 시민의 냉소, 체념 또는 분노와 "유권자가 원하지 않으니 증세와 복지 확대를 추진할 이유가 없다"라는 정치인의 계산은 서로를 강화한다.
정치학자 존 잘러(John Zaller)는 공공 여론이 정치 엘리트가 위로부터 보내는 당파적 신호(partisan cues)에 의해 상당 부분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여러 나라에서 나타나는 민주주의의 위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전체 내용보기 ...
이 뉴스, 어떠셨어요?
탭 한 번으로 반응 · 로그인 불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