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좀 이상하다"는 <호프> 황정민 대사, 곱씹어 보니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추격자>의 연쇄살인범, <황해>의 조선족의 밀입국 브로커, <곡성>의 악마와 그와 결탁한 무당. 나홍진의 영화 세계에서 악당들은 주민등록증을 갖고 있는 시민이었다가 국경을 넘나들며 불법을 저지르는 조직폭력배를 거쳐 신원미상의 외국인으로 점차 이해의 범위를 넓혀간다. 무지의 영역은 넓어지지만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으며 무슨 사연을 갖고 있는지 전사가 밝혀지지 않은 이들은 주인공의 일상을 파괴하고 사고 이전의 삶으로의 복귀를 방해한다.
자연재해와도 같은 대적자들로 일어나는 나홍진 세계의 불가해한 비극은 <호프>에 이르러 마침내 외계인으로 확장된다. 앞서 불가해하다고 비유했지만 그래도 공권력 앞에서는 자기방어적 진술로 범죄를 은폐하려 하는 사이코패스적 사회성을 보여주고(<추적자> 지영민), 협상을 통한 계약과 거래로 금전적 이득을 취하려는 자본주의적 태도를 갖추거나(<황해> 면정학), 종교와 무속신앙 같은 지식체계를 공유하며 오컬트적인 상호작용이 가능(<곡성> 일광, 외지인)한 지구의 악당들이었다. <호프>의 외계인은 당연히 다르다. 어떤 의도가 드러나지 않으며 나홍진 유니버스에서도 독보적이며 절대적인 미지의 존재다.
사냥감과 사냥꾼의 전복
나홍진은 주인공을 사건의 한가운데에 떨어뜨리고 반응을 살핀다. 실종된 인과관계 속에서 주인공들은 수차례 자신의 가설을 수정하며 답을 찾으려 한다. <추격자>의 엄중호는 지영민이 살인범임을 믿지 않는다. 본인이 관리하는 매춘부들이 연이어 실종됐어도 마이킹을 먹고 튀거나 4885가 팔아넘겼다고 짐작할 뿐이다. 무능력하게 표현되는 경찰들이 뒷걸음질하다 쥐 잡는 격으로 지영민을 잡아넣는 순간에도 저런 놈이 무슨 살인이냐며 비웃는다. 물론 자신이 증거를 발견하기 전까지 이야기다.
<황해>는 큰 빚을 내고 한국에 밀입국한 부인이 외도하고 종적을 감췄다는 의심에 망가지는 조선족 남자의 이야기다. 구남의 절망적 상상과 면정학의 끝없는 욕망, 태원의 구질구질한 악의가 뒤섞이며 청부살인이라는 조그마한(?) 사건은 한국을 뒤흔드는 스캔들로 확장된다. 은행원 정환까지 끼어든 거대한 파국의 전모를 파악하는 캐릭터는 극 중에 없다. 각자 갖고 있는 진실의 파편과 그에 대한 믿음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고 운명의 잔혹한 수레바퀴는 끝내 그들 모두를 편력 없이 짓뭉갠다.
<곡성>은 더 직접적으로 진실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곡성 땅에 외지인이 나타나고 기이한 사건이 벌어진다. 느자구 없는 풍문들은 종구의 딸 효진의 이상증세로 설득력을 갖춘 가설이 된다. 타당한 이야기를 믿게 된 종구는 일광을 신뢰하고 굿을 펼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일광과 외지인은 한패다.
탄식을 토하게 만드는 부분은 효진이 사라지고 종구와 무명이 만나는 장면이다. 종국은 덫을 쳐놨으니, 닭이 세 번 울 때까지 기다리라는 무명의 말을 믿지 않는다. 무명이 걸치고 있는 피해자들의 옷가지, 효진의 머리띠라는 눈앞의 증거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불신을 결정한 건 다음의 대화다.
종구: 그러면... 하나만, 하나만 묻자.
무명: 뭣을?
종구: 그놈이 왜... 도대체 뭣 땜시 이러는 것인지...
무명: 네 딸의 애비가 죄를 지었응께.
종구: 무신 죄? 나가 무신 죄를 지었는데?
무명: 네 딸의 애비가 남을 의심허고 죽일라 카고... 결국엔 죽여부렀어.
영화상에서 관객에게 주어진 단서들만 보면 무명의 말이 맞다. 외지인이 효진에게 해코지했다는 심증은 있으나 물증은 없다. 종구의 억울함은 심정적으로 이해하지만, 친구들을 이끌고 외지인을 쫓고 트럭으로 친 뒤 유기한 순간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극 중에서 결정됐다. 낚싯줄에 뭐가 딸려올지는 모르고 그저 미끼를 던진 게 다라는 일광의 설명도 딱 들어맞는다.
<호프>에서도 앞선 영화들처럼 미지의 존재 앞에 툭 떨어진 주인공은 파편화된 진실로 인과를 구성하려 하지만 가해자와 피해자, 사냥감과 사냥꾼의 역할이 극적으로 전복되며 더 깊은 혼란으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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