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 강제 입원까지...우울증 시달린 대문호를 지킨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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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고백하자면, 고등학교 때 열렬히 탐독한 이후 나는 한동안 그를 멀리했다. 대학생 때는 헤세를 좋아한다는 선배 앞에서 "저는 좋아하지 않아요"하고 당당하게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내가 20대였던 80년대에 헤세의 작품은 지나치게 귀족적이고 정신적으로 보였다. 바로잡아야 할 현실이 있는데 내면의 자기완성을 위해서만 애쓴다는 것은 왠지 사회적 존재로서 자기 할 일을 외면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렇게 한 삼십여 년을 멀리하다가 중년의 문턱에 선 어느 날, 헤세를 다시 만났다.
한 달 가까이 장마가 이어지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고온의 끈적끈적한 공기 속에서 세상이 너무나 비상식적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비관과 내 삶이 무가치하다는 자기 회의가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눅눅해진 거실 바닥에 등을 붙이고 누워 있을 때 천장이 저만치 높이 있었는데도 거의 압사당할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더 살아갈 필요가 있을까? 스멀스멀 극단적인 감정이 올라올 때였다. 비평가 김현이 어느 글에서인가 방학 때면 <싯다르타>를 읽고 위안을 얻는다고 말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책꽂이 구석에서 책을 찾아 첫 장을 펼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갔다. 그러다가 중간 어디쯤에서, 드디어는 온몸으로 번져나가는 느꺼움에 어쩔 줄 모르게 되었다.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것, 오직 이것만이 중요할 뿐이야." 그런 듣기 좋은 말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떤 존재, 싯다르타가 처음 사문의 세상에서 세속의 세상으로 건너올 때 뱃삯도 받지 않고 건네주었던, 그리고 세속의 삶에서 피폐해져 돌아왔을 때 이번에는 그의 이야기를 말없이 들어주었던 사람, 뱃사공 바주데바. 그가 나에게 깊은 감동을 준 것이다.
내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줄 누군가가 이 세상에 있다는 것. 그것만큼 위안이 되는 일이 있을까? 우리의 외로움은 어쩌면, 진심으로 내게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다는 데에 있을지도 모른다. 장사꾼은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돈 계산을 하고, 정치인은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표를 계산한다. 인기 연예인은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팬 관리를 하고, 유튜버는 내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좋아요, 구독을 눌러달라 한다. AI는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엇을 할까? 아마도 데이터를 모으고 있으리라.
이렇게 타인이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만 존재한다면, 인간관계는 일찍이 사르트르가 말한 '지옥'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데 뱃사공 바주데바는 진심으로 자신에게 귀 기울여주는 그런 존재가 있다고 말한다. 강물. 늘 그 자리에 있지만 늘 새로운 강물. 강물은 당신의 이야기를 다 들어줄 것이라고 바주데바는 말한다.
이런 존재가 곁에 없을 때 우리는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살 충동을 느낄지도 모른다. 헤세의 소설에는 이런 인물이 여럿 나온다. <수레바퀴 아래서>, <싯다르타>, <황야의 이리>. 아마도 헤세 자신이 우울증과 자살 충동을 겪었기 때문이리라.
우울증에 시달린 헤르만 헤세의 탈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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