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2개월, 아버지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랐던 딸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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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규씨가 세상을 떠난 지 2년 2개월, 딸 효진씨와 가족들은 이제 민사 재판 선고를 앞두고 있다. 사고 이후 정보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시간을 보내며 여러 곳의 문을 두드리던 때부터 중대재해처벌법 형사 재판, 손해배상 책임을 다투는 민사 재판까지, 길었던 법적 절차가 마무리되는 지금 유가족의 마음은 어떨까.
효진씨가 김용균재단에 도움을 요청한 이후 재단은 강대규씨의 중대재해 사건 대응 과정에 함께했다. 이 글에서는 김용균재단이 동행한 재판을 중심으로 산업재해 유가족이 마주한 현실과 그 안의 문제점을 기록한다.
긴 기다림 끝에 시작된 재판
2024년 4월 18일, 강대규씨는 공장 지붕 철골 위에 서 있었다. 판넬을 받아 지붕에 설치하는 작업이었고, 그의 뒤에는 함께 작업하는 동료들이 있었다. 그때 크레인으로 들어 올린 판넬이 흔들리며 강대규씨와 부딪혔다. 66kg에 달하는 판넬의 무게로 그는 뒤로 밀려났고, 그대로 13m 아래 바닥으로 추락해 사망했다. 안전모나 안전대, 추락을 방지할 보호 장치는 없었다.
40년 가까이 건설 현장에서 일했던 아버지는 왜, 그날, 그곳에서 목숨을 잃어야 했을까. 응급실 앞에서 사측 관계자는 "회사가 영세해서 사정이 어렵다"는 말만 남긴 채 자리를 떠났다. 빈소에 조문을 오지도, 사고 경위를 설명하지도, 유가족에게 사과하지도 않았다. 유가족이 연락을 취하자 "회사가 문을 닫게 생겼다"며 가족들에게 또다시 상처를 줬다.
첫 재판이 열린 건 2025년 11월이었다. 사고 발생 1년이 지나서야 검찰은 대표와 현장소장 등 관리자 2명을 재판에 넘겼고, 본 재판이 시작되기까지는 다시 반년 이상이 걸렸다. 그동안 유가족에게는 어떠한 안내도 없었다. 수사부터 재판까지 모든 과정에서 유가족은 제3자처럼 취급되며 배제됐다.
답답했던 효진씨가 직접 고용노동부, 경찰, 검찰을 찾아다녔지만 "수사 중이라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중대재해 사건에서 사망한 피해자를 대신해 진실을 확인하려는 유가족은 당사자로서 충분히 예우받지 못한다. 현행 형사절차에서 유가족은 사건 기록에 접근하기 어렵고, 수사 진행 상황을 안내받을 권리도 제한적이다.
효진씨의 가족은 정보공개청구와 사실조회 신청, 국회를 통한 자료 요청을 거듭한 끝에 사고 발생 1년이 지난 2025년 5월 2일 재해조사의견서를 받았다. 그제야 사고가 어떻게 발생했는지, 아버지가 얼마나 높은 곳에서 추락했는지 등 구체적인 경위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저 '아버지가 불운하거나 잘못해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 과정은 길고 험난했다.
"수많은 사고가 소규모 현장에서 발생하는데, 사실 유가족으로 나서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운이 좋아서 사건 전말을 알 수 있었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수많은 유가족들은 정보 접근이 더 어려울 거예요."
15분, 법정에 서서야 고개 숙인 회사
효진씨는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고 했다. 재판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 책임을 묻는 건 아닐까. 이제 말할 수 없는데."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저 멀리서 회사 대표와 현장소장, 과장이 함께 걸어왔다. 합의서를 작성할 때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던 대표를 이제야 볼 수 있었다. 저 사람이 대표인 것 같다고 속삭이며, 효진씨는 한동안 그들을 바라봤다.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린 시간이 무색하게 재판은 순식간에 끝났다. 사측은 "모든 공소사실을 인정한다"며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가족 앞에서는 침묵을 지키던 이들이 판사 앞에 서서는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다른 근로자는 재해를 입지 않았으니 망인의 작업상 과실도 일부 있다"고 주장했다. 강대규씨에게도 책임이 있으니 이를 고려해달라는 취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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