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 미래 우리가 책임질게" 할머니들의 조용한 문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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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베를린 공기는 뜨거웠다. 동네 야외 맥주집, 카페, 식당마다 스크린을 내걸고 월드컵 경기를 보여주는 까닭에 새벽까지 함성이 이어졌다. 토요일 오전에는 수은주가 이미 30도로 치솟았다. 신문을 보니 "베를린 스트레스 지수 독일 최고"라는 문구가 들어왔다. 소위 말하는 코르티솔-스트레스-인덱스 2026'가 최고치에 달했다는 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베를린은 높은 병가율과 함께 전형적인 대도시 스트레스 패턴을 보인다고 한다. 과도한 소음, 높은 인구 밀집도, 불규칙한 노동시간이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베를린보다 인구밀도가 4배 높고 교통혼잡 지수도 휠씬 높은 서울 시민들의 스트레스 지수는 어떨까? 베를린 시민들의 엄살이 또 도졌나?
그런데 흥미롭게도 함부르크나 뮌헨처럼 1인당 구매력이 높은 도시들이 상대적으로 여유롭다는 결과가 나왔다. 돈이 행복을 보장하지는 못하더라도, 스트레스를 버텨내는 완충지대는 되어줄 수 있다는 다소 씁쓸한 결론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런 와중에 종일 도시 전역에서 벌어지는 거리 음악 축제 Fête de la Musique가 또다시 도시 공기를 달굴 것이다.
1인당 구매력과 함께 음악도 스트레스 해소에 분명 도움을 주겠지만 5월 초부터 주말마다 축제가 열리다 보니 월드컵과 겹치면서 과부하가 걸린 듯했다. 머릿속까지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어 동네 주말 장으로 향했다. 신선한 채소와 싱그러운 과일, 꽃과 갓구운 빵의 향기가, 일상의 냄새가 그리웠다.
너희들 미래는 우리 할머니들이 책임질게
그런데 장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나이 지긋한 여인 두 명이 서서 말을 걸어 왔다. 기후에 관심 있으시면 우리랑 얘기 좀 하실까요? 목에는 푸른 지구가 그려진 하트 모양의 초대형 펜던트를 걸고 손에는 전단을 들고 있었다. 펜던트에는 "미래를 위하는 할머니들 omas for future"이라고 쓰여 있었다. "오마 oma"는 할머니를 부르는 다정한 호칭이다. 이 움직임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2018년 스웨덴의 14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가 시작한 청소년 기후 운동이 독일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고 수십만 명의 학생들이 거리로 나왔다. 이에 부응하여 50세 이상의 여성들이 유사한 모임을 결성했다. 그들은 지구 환경파괴의 책임이 우리 세대에 있다고 말하며 손자들의 미래를 지켜주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선언했다. 기후 위기와 생물다양성 상실 문제를 널리 알림과 동시에 정치권을 압박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2019년 라이프치히에서 시작하여 삽시간에 독일 전역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까지 번져 현재 약 100여 개의 지역 모임이 결성되었다. 베를린 지역 모임엔 약 100명의 회원이 활동 중이다.
장터에서 만난 두 명의 여인 중 카린 바지 여사가 내 인터뷰에 기꺼이 응하겠다고 답했다. 집으로 돌아와 인터뷰 질문지를 만들어 이메일로 보낸 뒤, 받아 온 기후 퀴즈집을 펼쳤다. 자신 있었다. 연방환경청 자료를 꿰고 있는 내가 이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 라면서 퀴즈를 풀기 시작하다가 완전히 낭패했다. 보통 수준의 퀴즈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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