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주인> 속 쪽지가 관객에게 묻는 것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한번 있는 '부부의 시간'이 돌아왔다. 주말의 복잡함을 피해 우리는 어딘가로 떠나는 대신, 집에서 온전히 빈둥거리기로 합의했다. 이런 날 넷플릭스로 보는 영화 한 편이 빠질 수 없으리라. 사전 지식도 없이, 그저 제목과 짧은 안내 글만 보고 한 작품을 골라잡았다. 그렇게 우연히 마주한 작품이 바로 영화 <세계의 주인>이었다.
영화를 보며 인물들의 일상을 조용히 따라갔다. 주인공 '주인'이는 참 명랑하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학교의 '인싸'이면서, 그 나이 또래다운 연애도 한다. 집에서는 어린이집 원장을 하는 엄마를 오히려 살뜰히 돌보고 동생을 챙기는 것에도 능숙하다.
하지만 그 평화로움 이면의 풍경은 어딘가 서늘하다. 시들 줄 알면서도 늘 꽃을 사다 꽂아두고는 치우지 않는, 텀블러에 술을 담아 물처럼 마시는 엄마. 집을 나가 주인이의 메시지를 읽고도 답하지 않는 아빠, 그리고 누나에게 온 편지를 가로채 숨기는 동생까지.
영화 속 중요한 장치, 쪽지
모범적이어도 너무 모범적인 주인이의 모습 뒤로 묘한 불안감이 엄습한다. 중간중간 농담처럼 던지는 말 속에 어떤 진실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아슬아슬함. 섣부른 판단은 유보했지만, 무언가 묵직한 사연이 있겠다는 짐작만큼은 지울 수 없었다.
내심 주인공이 혹시 성폭력 피해자가 아닐까 생각하며 화면을 따라가던 중, 설마 했던 가해자의 정체를 마주했을 때의 충격은 상당했다. 가정이 파탄 나고도 남을 비극 속에서도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든 일상을 살아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주인이의 태도다. 주인이는 세상이 흔히 상상하는 '인생이 통째로 망가져 버린 성폭력 피해자'의 틀에 갇히기를 단호히 거부한다.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세상의 시선에 당당히 맞서며 자신의 세계를 지켜나간다.
그 과정에서 영화 속 익명의 쪽지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웃어도 놀아도 속은 다를 것이다", "모든 것이 거짓이다"라며 주인이를 추궁하고 "어떤 게 너의 진짜 모습이냐"고 묻는 쪽지들. 그것은 사실 관객에게로 향하는 거울이기도 하다. '당신은 피해자에게 어떤 선입견을 품고 있는가? 당신의 시선 역시 그 편견에서 예전과 다르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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