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도시, 기억의 도시 하얼빈
이주민센터 '친구'의 첫 번째 중국 현대 도시기행 프로젝트로 '하얼빈'을 찾았습니다. 준비 모임에서 받은 일정표에는 중앙대가, 성 소피아 성당, 송화강, 하얼빈역, 태양도, 731부대 박물관 같은 방문 예정지의 이름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겨울 관광 일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동북아 근현대사의 기억을 따라가는 답사에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 러시아와 일본, 혁명과 식민, 독립운동과 사회주의의 흔적들이 이 도시 곳곳에 겹쳐 있었습니다.
하얼빈은 국경과 제국의 도시입니다. 1898년 러시아는 동청철도 부설을 시작했습니다. 시베리아 철도를 만주까지 연결하려는 제국의 야심은 송화강 주변의 작은 어촌을 국제 도시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철도는 단지 교통수단이 아니었습니다. 철도는 군대와 자본, 언어와 문화, 그리고 폭력이 함께 이동하는 통로입니다. 러시아는 철도를 통해 만주를 지배하려 했고, 일본은 러일전쟁 이후 그 철도를 다시 이어받아 자신들의 제국 질서 속에 편입시켰습니다. 하얼빈이라는 '현대' 도시는 처음부터 근대 동북아의 힘의 충돌 위에서 성장했습니다.
하얼빈 시내의 중앙대가를 걷다가 그 역사가 지금도 건물 외벽처럼 남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풍 석조 건물들과 유럽식 상점들 사이를 걷고 있으면 여기가 정말 중국의 도시가 맞는지 잠시 혼란스러워지기도 했습니다. 그 이국적 풍경은 단순한 낭만의 결과가 아닙니다. 누군가의 개발과 누군가의 침략, 그리고 누군가의 이주와 망명이 겹쳐 만들어진 풍경이었습니다.
저는 이번 여행을 다녀온 후 기행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도시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회에서의 활동과도 연결됩니다. 변호사 일을 시작한 후, 저 는 줄곧 한국 현대사의 국가폭력과 진실규명 문제를 계속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하얼빈의 거리와 건물들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기억의 현장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얼빈역은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던 곳입니다. 지금의 하얼빈역은 거대한 현대식 역사(驛舍)로 바뀌어 있었지만, 그 공간이 품고 있는 시간까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저는 역 안의 안중근 기념관을 둘러보면서 법과 폭력의 관계를 생각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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