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 일구고 배로 호수 건넌" 50년의 세월을 듣다
지난 2일 이른 아침, 전북 임실 섬진강 옥정호 남쪽의 호숫가에 한 농가만 있는 외딴 마을을 찾아갔다. 강진터미널에서 섬진강댐을 지나 수방리까지 이어지는 길은 12km 남짓이었다. 수방산(632m)에서 북쪽으로 호수에 1.3km 뻗어내린 산줄기의 동편으로 수암마을을 거치는 소로(小路) 1.6km는 걸어서 갔다.
옥정호 자라섬의 풍경이 가깝게 한눈에 들어왔다. 길가 풀숲에는 가시엉겅퀴가 여기저기 피어있었다. 옥정호 수위가 낮아져서 왼쪽의 장재마을에서 호수 가운데의 자라섬까지 능선이 연결된 호수의 풍경이 멀리서 보였다.
기자는 지난 5월 초순에 옥정호의 절경 8곳을 찾아보았다. 이때 운암면 운정리의 호수 풍경과 자라섬을 '별도고적(鼈島孤寂), 호수 위에 외롭고 고요한 자라섬'으로 묘사하였다. 지난 5월 초순에는 장재마을 산줄기에서 자라섬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대부분 물에 잠겨 있었다(관련기사: 23km 물길에 새겨진 절경, '섬진강 옥정호 8경'을 가다).
수방산 산줄기가 옥정호에 닿은 호숫가 외딴 집에 송순문씨가 살고 있다. 1965년 섬진강댐 완공으로 운암강이 호수가 되자 그는 수몰민이 되었다. 서해안의 계화도로 이주했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길이 없어서 범어마을에서 배를 타고 건너는 이곳 호숫가 황무지에 혼자 터를 잡았다. 이후 50년 가까이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배를 저어 오가던 마을
송순문씨의 농가에 도착하니 예초기를 손질하고 있었다. 팔순 초반의 송순문·신이순씨 부부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물이 출렁이는 호숫가의 이 마을은 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이 없었다. 호숫가 척박한 밭의 농작물에 물을 주려고 드럼통을 땅에 묻어 빗물을 모으고 있었다. 집 앞의 호수를 가리키며 송순문씨가 말했다.
"저 앞 호수 물속에 고재마을이 있었어요. 나는 호수 건너편 범어리에 살다가, 마을이 수몰되고 아무도 살지 않은 이곳 산기슭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농사지었지요."
"어릴 때(1940년대 말~1950년대 초) 범어리에 살면서 금기국민학교를 다녔어요. 그때는 학생 수가 많아서 400명 정도 되었지요. 장재골로 걸어가서, 배를 타고 운암으로 또 걸어서 금기리 학교로 갔지요. 학교 가는 길이 이십리가 넘었어요. 이곳 고재마을 아이들은 배를 타고 장재골로 가서, 우리랑 함께 갔지요."
호숫가의 선착장으로 내려갔다. 물결 위에 지붕을 얹은 나룻배 한 척이 닻줄에 매여 바람에 흔들리고, 그 옆에 물이 빠져 드러난 흙바닥과 거친 바위 틈에 작은 나룻배 한 척이 비스듬히 머물렀다.
호수 건너 성옥산 자락에 범어마을이 보였다. 범어마을은 송순문·신이순씨 부부가 헤아릴 수도 없이 배를 저어 오가던 마을이었다. 고재마을에서 범어마을까지 약 800m의 호수는 나룻배로 세상을 연결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신이순씨는 혼자 나룻배를 저어서 범어마을로 마실 가는 게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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