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혐오' 위해 소환된 '도요타 상생' 프레임 유감
1. 들어가며: 경총 보도자료 검증없이 확대재생산
최근 대기업 노동조합의 성과급 및 이익 배분 요구를 둘러싼 언론 보도는 한국 언론의 고질적인 병폐인 '받아쓰기 저널리즘'과 '프레임 동조화'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사태의 발단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5월 31일과 6월 1일 이틀 연속 발표한 두 건의 보도자료였다. 첫 번째 보도자료는 성과급과 이익 배분 요구에 대한 경영계의 법리적 입장을 담고 있었고, 두 번째 보도자료는 일본 도요타 노사관계를 사례로 한국 노사관계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경총이 보도자료를 냈다는 사실이 아니다. 문제는 이 두 건의 보도자료가 별다른 검증 과정 없이 수백 건의 기사와 사설로 확대 재생산되었다는 점이다.
▲첫 번째 보도자료(5월 31일 일요일): 경총은 '노동조합의 기업 이익 배분 요구에 대한 경영계 특별 권고'를 회원사에 배포했다. "영업이익 성과급은 임금이 아니다", "이익 배분 기준을 제도화하는 것은 고유한 경영판단이므로 단체교섭 대상이 될 수 없다", "노조의 선제적 분배 요구는 주주의 권리를 침해하고 파업 시 위법 소지가 있다"는 법리적·제도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두 번째 보도자료(6월 1일 월요일): 첫 발표 이후 다음 날 경총은 '도요타 노사관계의 시사점' 보고서를 발표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 노조가 생산성과 품질, AI 시대의 개인 부가가치를 고민하며 주도적으로 혁신하는 반면, 한국의 대기업 노조는 오직 'N% 성과급'이라는 분배 중심 교섭에만 매몰되어 국가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있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①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문장 복제(Cloning)
문제는 보도자료 배포 이후 언론의 움직임이었다. 단 이틀 동안 경총이 쏘아 올린 프레임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분석 시스템(빅카인즈)에서 '경총', '성과급'이란 키워드로 12개 전국일간지, 13개 경제신문, 11개 인터넷신문을 대상으로 집계한 결과, 86건의 정식 기사와 사설로 복제되어 보도됐다. 포털의 중복·전재 기사까지 포함하면 최소 150여 건에서 200여 건에 달하는 규모다. 주요 뉴스통신사가 경총의 문구를 그대로 타전하자마자, 국내 주류 일간지와 경제지들은 약속이나 한 듯 대량의 복제 기사와 사설을 양산하며 재계의 논리를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스피커 역할을 자처했다.
기사마다 제목의 표현은 조금씩 달랐지만, 논리 구조는 완벽하게 일치했다. "기업 이익 배분 요구는 단체교섭 대상이 아니다", "춘투 대신 춘공", "분배 중심의 과격 투쟁" 등 경총이 제시한 수사학적 표현들이 오타와 조사까지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반복 전재되었다.
그러나 경총의 논리를 검증 없이 수용한 이 같은 보도는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의 범위에 대한 노동법 학자의 견해나 노동계의 반론을 취재하려는 저널리즘적 노력은 철저히 생략되었다.
2. 언론이 검증하지 않은 경총 권고안의 법리적 쟁점
이번 보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경총 주장의 타당성 여부보다도, 해당 주장이 거의 검증 없이 기사화되었다는 점이다. 경총은 기업 이익 배분 기준을 단체교섭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성과급의 임금성 여부와 교섭 대상 범위는 오랫동안 노동법 학계와 산업현장에서 논쟁이 이어져 온 사안이다. 실제로 노동계와 일부 법률 전문가들은 성과급이 노동자의 경제적 지위와 근로조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충분히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수 언론은 이러한 반론과 쟁점을 충분히 소개하기보다 경총의 문제 제기를 중심으로 기사를 구성했다.
① 대법원 판례를 전면 부정한 논리
- 경총과 언론의 주장 : 영업이익 성과급은 근로의 대가가 아니므로 임금이 아니다.
- 실제 법리(Fact) : 이는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를 거스르는 허위 주장에 가깝다. 대법원은 이미 수년 전부터 현대오일뱅크, 삼성전자 등 민간 대기업 경영성과급 소송에서 "취업규칙, 단체협약, 혹은 노사 간 지급 관행에 따라 지급 조건이 확정되어 있다면 경영성과급 역시 명백한 근로의 대가인 임금에 해당한다"고 판시하며 임금성의 범위를 넓혀왔다.
② 단협으로 교섭해 온 현실 은폐
- 경총과 언론의 주장 : 성과 배분 기준 제도화는 고유한 경영권이므로 교섭 대상이 아니다.
- 현장의 실제(Fact) :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국내 대기업 노사는 오랫동안 임단협 특별교섭을 통해 성과급 지급 기준과 규모를 매년 논의하고 합의서에 서명해 왔다. 고용노동부 역시 노사 합의에 따른 성과급 배분 기준 설정을 정당한 교섭 사항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번 삼성전자노동조합의 성과급 요구는 노동위원회 조정 절차를 거친 합법적 교섭이다. 보수언론은 저널리즘의 기본 책무인 성과급 교섭의 사례조차 취재하지 않은 채 경총의 논리를 복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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