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벅 탱크데이' 논란... '오월의 청춘'이 던지는 경고
중학교 다닐 때 같은 반에 이름이 '일구'인 친구가 있었다. 생일이 19일이어서 일구였다. 나는 한자로 한일에 아홉구인, 그래서 외우기도 쓰기도 쉬운 친구 이름이 부러웠다. 쉬운 이름이란 것 말고는 특별할 거 없는 이름인데, 알고 보면 매우 특별한 이름이기도 했다. 그 당시 우리는 광주의 어느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우리는 1980년생이었다. 광주, 1980년, 5월. 이 세 단어가 합쳐지면서 생일이 19일인 내 친구의 이름은 아주 특별한 이름이 되어버렸다.
누구보다 더 폭력에 민감했을 법한 광주였지만, 당시 광주의 많은 청소년들은 너무나 일상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수학 선생님(이름을 아직도 정확하게 기억한다)은 겉모습은 병약해 보였고 특별할 게 없었는데 가끔씩 이상한 질문을 던지고 아이들에게 답을 강요한 뒤 정답이 아니라고 회초리(라고 하기엔 꽤나 두꺼운 막대기)로 머리통을 한 대씩 때렸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그 교사가 부부싸움을 했다거나, 노름판에서 돈을 잃었다거나, 뭔가 우리를 때려야만 하는 이유를 분주하게 찾았다.
그런 그가 딱 한 번 진지하고 우울한 말투로 우리에게 자신의 대학시절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일구의 생일이 지난 며칠 뒤였다. 1980년에 자기는 대학생이었다는데, 나중에 학교에 와보니 돌아오지 못한 친구들이 있었고, 그중 어떤 친구들의 자리에는 하얀 국화꽃이 놓여있었다고.
당시 나는 그의 말이 묘하게 불편했다. 광주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고, 무등야구장에 가서 '목포의 눈물'을 따라 불렀고, 어른들에게서 5.18에 대한 이야기를 무던히도 많이 들었으니, 그의 아픔에 공감할 만도 했지만, 평소에 그렇게나 우리를 때려댔던 사람이 갑자기 슬픈 얼굴로 계엄군에게 죽은 친구 이야기를 하니까 혼란스러웠던 거였다.
그가 행사한 폭력이 그가 당한 국가폭력의 피해에서 기원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 국가폭력은 피해자의 마음을 파괴하고 피해자를 폭력의 가해자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는 것은 나중에 평화활동가가 되고 난 뒤에야 알게 되었으니까. 1980년에 태어나서 청소년 시기를 광주에서 보낸 사람들에게 광주민주화운동은 국가폭력에 저항한 역사인 동시에, 우리의 일상이었던 셈이다.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마케팅
지방선거를 앞두고 볼만한 시리즈물을 소개하는 글을 써야 했는데 순간 난감했다. 평화운동의 쟁점은 지방선거에서는 부각되기 힘들고, 지역 이슈에 대해서는 내가 잘 모르니까 무슨 주제로 써야 할지, 무슨 작품을 소개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5월 18일 스타벅스의 이른바 '탱크데이' 마케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며 유머랍시고 해댈 법한 말들, 아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유머로 눙치고 넘어가서는 안 되는 몰역사적이고 반정치적이고 저열한 혐오 표현들을 스타벅스 같은 거대한 기업의 공식적인 채널에서 버젓이 접하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결국 큰 파장을 불러왔다. 여당과 청와대는 문제의 마케팅 직후 연일 스타벅스를 비판했고, 일부 국민의힘 정치인들과 극우세력은 되려 스타벅스 인증샷을 올리며 스타벅스를 옹호하고 나섰다.
전체 내용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