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가고 싶었는데, 제일 기억에 남는 고3 특강
기말고사가 끝나고 방학식 전까지 중고등 학생들은 학교에서 영화를 보거나, 엎드려 자거나, 농담 따먹기만 하면서 시간을 보낼 때가 있었다. 다행히 요새는 이 시기에만 할 수 있는 특강 프로그램이 많이 생겼다. 특강 강사인 나는 지난주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로 향했다. 전교생이 100명도 안 되는 작고 조용한 학교였다.
이런 특강은 보통 중2부터 고2를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수업 전날 밤 문자 하나가 왔다. 내가 학급 정원 10명의 고3과 6교시 짜리 수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일단 고3 학생들과 해본 적이 없다. 이번 특강인 '창업가정신' 프로그램은 기존 것을 리뉴얼한 버전이었다. SWOT 분석 같은 마케팅 용어를 다뤄야 하고 가상의 지역 서점을 어떻게 살릴지 전략 회의까지 해야 했다.
30명 정원이라면 여기저기 참견하면서 힌트 주고 하면서 적당히 흘러가는 시간이 있을텐데 10명은 그렇게 흐를 시간이 없다. 처음 보는 강사와 고3 학생들이 이걸 진지하게 해낼 것 같지 않았다. 도망가고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들이 못 쓴다고 늘어질 때를 대비한 예시를 잔뜩 만들어 놓는 거 밖에 없었다. 전날 새벽 1시까지 샘플을 만들었다.
눈빛이 죽어가던 순간 꺼낸 이야기
이날 프로그램은 "창업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대신 창업의 마인드를 갖자는 것에 가깝다. 그래서 회복탄력성을 중요하게 다룬다. 스타벅스 하워드 슐츠는 '제3의 공간'을 끈기로 만들었다. 엔비디아 젠슨 황은 분석력으로 망해가던 회사를 살렸다. 파타고니아는 환경보호라는 일관성을 지킨 덕에 유명해졌다. 변호사를 그만두고 건강한 그래놀라를 만들기 시작한 어떤 창업가는 용기가 있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는데 아이들 눈빛이 점점 흐려지는 게 보였다. 안 되겠다 싶었다.
"그럼 이 회복탄력성을 가진 웹소설 주인공을 우리가 한번 만들어볼까?"
끈기, 분석력, 일관성, 용기 중 하나를 골라 그 성격을 가진 인물의 스토리라인을 짜보자고 했다. 그 순간 아이들이 살아났다.
"너희가 만든 이 인물, 어쩌면 너희 안에 있는 잠재력일지도 몰라."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초롱초롱해진 아이들에게 정말 그런 역량이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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