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를 꿈꿨던 공무원, 이주인권 활동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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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좋아서 공무원이 된 사람
- 반갑습니다. 소개를 먼저 부탁드릴게요. 스스로를 한 단어로 설명한다면 무슨 단어일까요?
"'호기심'이라고 해야 할까요? '궁금증'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쨌든 20년 다니던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게 됐던 계기도 됐고, 제가 계속 삶에서 에너지를 얻는 것도 되고. 궁금하면 바로 검색하고 확인하고, 그래서 새롭게 뭔가 알게 되는 것들을... 그래서 여행하는 것을 엄청 좋아하는데, 매일 집 앞에서도 같은 시간대에 주변 풍경이나 날씨에 또 새로운 것들이 있어서 그런 걸 발견하는 걸 좋아해요."
- 국가인권위원회가 첫 직장이셨어요?
"그렇지는 않고요. 제가 원래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까 외무 공무원 쪽을 하다 보면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면서 여행처럼, 집시처럼 살 수 있겠다, 외무 공무원 준비를 하면서 공무원 시험을 오랜 기간 봤었고 그러다 합격해서 출입국 공무원을 2년 7개월 하다가 다시 시험 봐서 인권위를 20년 다니게 된 셈이었죠. 아마 인권위여서 20년을 다녔을 거예요. 저도 이렇게 오래 한 직장에 있을 줄 몰랐거든요.
출입국 공무원을 2년 7개월만 했던 이유가 뭐냐면, 저는 김포공항에 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발령받은 것이 인천출입국사무소에서 선박 쪽 업무를 한 거예요. 막상 가봤더니 인천항에 도착하는 큰 러시아 배부터 작은 중국 배까지 직접 제가 다 배에 올라가서 검사도 하고, 여성으로서 그렇게 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재미있고 즐거웠거든요.
근데 갑자기 연락이 온 거예요. 증명 발급하는 데 원래 여성 선배님이 있었는데 그분이 공항으로 가면서 그 자리를, 이왕이면 카운터를 젊은 여성이 맡아야 하지 않겠냐라는 것 때문에 저를 선택했다는 거예요. 그런 말을 들은 순간 '이 조직이 내가 계속 다녀야 될 조직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공무원 공부 더 이상 안 하려고 했었는데 다시 결심을 해서 그 해에 합격했어요. 7급으로 다시 합격한 건데, 저는 그때 위기가 기회가 된다는 것을 아주 절감했던 것 같아요.
공무원 세계가 되게 여러 개가 있었는데 제가 좋아했던 것은 여행이나 축제 같은 것이었으니까 '문화체육관광부 가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시험 붙으면 성적순으로 자기가 부처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저는 중간쯤이었는데 서울에서 갈 만한 부서들이 많지 않았어요. 인권위는 잘 모르는 곳이었는데 쉬는 시간에 인권위를 소개해 주더라고요. 그리고 사무실을 봤더니 인권위는 독립 건물이라고 하는 거예요. 제가 답답한 것을 싫어해서 청사 안에 들어가면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저길 가야 되겠구나' 생각했죠. 근데 제 앞순위 분이 딱 선택을 했고 저는 여성가족부를 선택했는데 발령이 좀 안 나다 보니까 나중에 인권위에서 사람 뽑는다고 해서 인권위로 온 거죠.
저는 제가 공무원을 하리라는 생각도 별로 안 했고, 인생이 계속 집시였고, 여행이었고, 그러다 보니까 사실 사회라든가, 정치라든가 이런 것에 대한 생각도 많지 않았거든요. 직업이라는 것도 내가 여행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인권위에 들어가서 세상에 대해서, 그리고 어른이라는 것에 대해서 많이 배웠어요."
- 인권위에서 20년이나 근무하셨는데 주로 어떤 일을 하셨어요?
'2004년도 1월에 바로 총무과에서 발령받았을 때, 그때 인권위가 세계 인권기구 대회를 개최해서, 전 세계 70여 개 국가에서 200명 가까운 사람들을 초청하는 행사를 했어요. 사무국으로 행사 운영하는 것을 9월까지 경험했어요. 그것도 엄청 큰 의미를 가졌어요. 그러고 나서 조직이나 인사 쪽을 한 3년 하다가 '교육'을 한 6년 정도 했어요. 교육에 워낙 관심이 있었거든요. 제가 스페인으로 유학 간 것도 원래 스페인 여행 가고 싶었던 것도 있었지만 시민 교육으로 전공을 선택해서 바르셀로나 대학에서 대학원을 다녔거든요.
학생인권 조례를 제가 유학 가기 전에 전담해서 했어요. 그때 인권교육센터들하고 같이, 배경내 선생님이나 류은숙 선생님이 실태조사를 한 결과를 토대로 권역별 토론회를 개최하며 조례에 실질적으로 반영하는 것을 초창기에 하다가 마무리는 못하고 유학을 갔죠. 스페인을 선택한 것도 당시 다산인권센터 박진 활동가님, 우리(인권위) 사무총장도 하셨지만, 그분의 글에 소개된 <벤포스타 어린이 공화국>을 감명 깊게 봐서 그런 것들도 좀 영향은 있었죠. 중간에 잠깐 차별조사 업무를 한 1년 반 했고, 현병철 위원장 때 '북한인권'을 6개월 했어요. 그리고 마지막 '이주인권'을 9년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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