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의 <호프>, 이거 하나는 인정한다

-이 리뷰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언제 희망을 느끼게 될까. 어쩌면 희망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감정이 아닐지도 모른다. 살아가다 보면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연이어 찾아온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도 하고, 실패를 경험하기도 하며,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현실 앞에 멈춰 서기도 한다. 그럴 때 사람은 희망을 찾기보다 살아남는 것부터 생각하게 된다. 희망은 여유로운 순간이 아니라,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비로소 그 의미를 드러내는 감정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화 <호프>의 제목은 더욱 흥미롭다. 영화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작품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을 추격하고, 살아남기 위해 도망치는 사람들의 공포를 집요하게 따라간다. 잠시 괴물을 쓰러뜨렸다는 안도감도 오래가지 않는다. 그것이 시작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인간들이 품었던 희망은 조금씩 사라져간다.
영화의 마지막에도 이야기는 예상 밖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희망을 잃어가는 것은 인간이었고, 오히려 희망을 품는 것은 외계인이었다. 영화는 그 아이러니를 통해 '희망'이라는 감정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첫 번째 감정] 범석의 공포
범석(황정민)은 작은 시골 파출소의 소장이다. 그는 영웅도 아니고, 세상을 구할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하는 평범한 경찰이다. 그래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를 처음 마주하는 순간, 그의 반응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총을 겨누지만 확신은 없고, 맞서 싸우려 하지만 두려움이 먼저 앞선다.
영화는 범석이 공포를 느낀 순간들을 길게 담는다. 공포라는 감정을 본능적으로 느끼게 되는 과정을 화면에 표현해낸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공포를 통해 살아남아 왔다. 불을 두려워하고, 어둠을 경계하며, 자신보다 강한 존재를 피하는 본능. 범석이 보여주는 떨림은 비겁함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가장 오래된 생존 방식이다.
특히 한 시간 가량 진행되는 첫 번째 추격 시퀀스는 압도적이다. 관객 역시 범석과 같은 위치에 서게 된다. 무엇을 쫓고 있는지도, 무엇에게 쫓기고 있는지도 완전히 알지 못한 채 마을에서 벌어지는 추격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영화는 정보를 바로 내주지 않는다. 그래서 두려움은 더 극대화된다. 공포는 괴물의 얼굴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나홍진 감독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감독은 범석의 얼굴을 통해서 그 공포를 온전히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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