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영화 보기 딱 좋은 시기, 방학이 시원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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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공포영화라면 여름 무더위가 따라붙는다. 시원하고 쾌적한 극장, 푹신한 좌석에서 간식거리 챙겨서 친한 이들과 함께 바깥 더위를 잠시 잊고 마음껏 소리도 지르고 눈도 질끈 감으며 작은 일탈을 누린다. 실제 현실과는 동떨어진 내용이라 비명을 지르며 두려움에 떨다가도 영화가 끝나면 개운하게 일어서면 그뿐이니 부담 없다. 작품성에 대한 높은 허들보다는 적절한 도파민 발산만 해주면 더 바랄 게 없다. 전형적인 방학 시즌 겨냥 공포영화다.
꽃집에서 일하는 '미치'는 동료가 연락이 끊기자 걱정이 되어 찾아갔다 충격적인 모습을 목격한다. 의문을 품던 다른 동료가 다시 방문하고 홀린 듯 기이한 행적을 보인다. 주변 사람들이 차례로 이상행동을 보이자 미치는 그들을 돌보지만, 그의 노력도 헛되이 하나둘 사라져간다.
대학생 '료스케'는 인터넷을 설치하려다가 느닷없이 "유령을 만나고 싶습니까?"라는 기분 나쁜 메시지를 마주한다. 컴퓨터학과 학생들에 도움을 청하다 만난 여학생 '하루에'가 조사해도 소득은 없다. 점점 도시에서 사람들이 사라져간다.
차별화된 사회적 불안
어느덧 칠십인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는 다양한 장르 마스터로 정평이 났지만, 현대인의 다양한 사회적 공포와 불안을 짚어낼 때 최상의 결과를 빚어내는 장인이 그의 정수로 꼽힌다. 감독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공포 3부작'은 20세기 말 일본 사회 당대 현실을 재료 삼아 전근대 민담이나 중세 전설에 기반한 고전 공포와는 궤가 다른 상상력을 선보인다. 2001년 공개된 <회로>는 1997년 <큐어>, 2006년 <절규>와 더불어 한 축을 점유하는 작업이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났다. 21세기의 서막을 연 <회로> 속 풍경은 지금 보면 아득한 옛날처럼 보인다. 누군가에겐 정겨운 추억일 전화선 모뎀을 이용해 '띠링띠링 ~ ' 접속 과정을 경유해야 간신히 인터넷 연결되던 시절이 화면을 수놓는다. 그땐 그랬지 하며 감회에 젖어 4K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쳤어도 여전히 어둑한 이미지를 응시한다. 지금과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여도 유심히 살피면 격세지감을 느끼기 충분한 묘한 이질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불과 10년 전, 일본은 거품경제 종말을 맞이했다. 1990년 직전 번영을 누리던 일본 경제를 전 세계가 주시하던 시절, <로보캅>이나 <떠오르는 태양> 같은 할리우드 명작에서 미국 패권을 야금야금 좀먹는 건 세계를 양분한 초강대국 소련이 아니라 2차 대전에서 자신들에 무릎을 꿇었던 일본이었다. 무역수지 흑자를 주체 못해 해외 부동산과 기업 수집에 열을 올리고, 폭등한 부동산 가치 덕분에 일본을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단 아이러니가 발생하던 시절이다.
사이버 스페이스에 펼쳐진 '멋진 신세계'?
<회로>를 온전히 소화하려면 21세기 온라인 네트워크 전성기의 태동과 20세기 말 일본 사회를 뒤덮던 무의식적 불안을 이해해야 한다. 이 둘을 떼 놓고 본 작품을 통상적인 공포물 관습으로 접근한다면 이미 철 지난 고리타분한 범작으로만 받아들여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다. 그러나 사회적 맥락을 일정하게 체화한 가운데 영화를 볼 수 있다면, 실로 차원이 다른 단계에 근접할 수 있게 된다. 특정한 사용법이 존재하는 작품인 셈이다.
지금처럼 온갖 인터넷 기반 장비를 신체 일부처럼 활용하는 시대에 영화 속 고작 25년 전 배경은 가깝고도 낯설다. 하드웨어 배경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 텔레비전이나 냉장고, 자동차는 디자인 차이만 느낄 수준이다. 하지만 격세지감이란 표현이 실감 나는 인터넷 접속 및 이용환경은 세월의 격차를 망치로 머리 때리듯 확인케 해준다. 온라인 환경과 기술 변화가 얼마나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하기에 충분한, 마치 평행세계 풍경이 가득하다.
그전까진 개인 간 내밀한 교감은 오프라인에 기반을 두고 이뤄졌다. 편지를 주고받고, 전화 통화하는 게 고작이다. 휴대 전화가 보급되기 시작했지만, 지금과 비교하면 제약이 적지 않았다. 여전히 상당수는 삐삐로 연락을 확인하던 때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편지를 주고받는 게 당연하던 일이다. 몇 시간 혹은 며칠 간격이 상대와 소통을 위해 당연한 기다림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순식간에 해일이 몰아친다. 실시간으로 모르는 이와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시대가 왔다. 상대가 실재하는 사람인지도 알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한 것. 사람들은 어두운 방구석에서 익명의 누군가와 소통을 갈구했다. 채팅하고 퀴즈를 내고, 여러 갈래로 범주화한 카테고리를 설정해 만남의 광장을 온라인에 개설한다. 무수한 관계의 명멸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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