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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시대, 한국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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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시대, 한국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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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3일 오후 3시, 세계경제연구원(IGE) 웨비나의 줌 화면이 몇 차례 멈췄다. 안식년 중 독일에서 접속한 신기욱 스탠퍼드대 석좌교수의 목소리가 끊기자 진행자인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제조업 강국 독일의 통신 사정이 뜻밖이라며 웃었다. 잠깐의 해프닝이었지만 이날 강연의 주제와 묘하게 겹쳤다. 한때 견고해 보이던 제도와 산업도 어느 순간 약한 고리를 드러낸다.

화면이 다시 살아난 뒤 신 교수는 국제질서를 "혼돈과 각자도생의 시대"로 규정했다. 국가 간 협력과 갈등이 사안별로 뒤섞이고, 안보와 경제의 경계가 무너졌다는 진단이다. 반도체, 인공지능, 공급망, 인재가 이제 산업정책만의 언어가 아니라 외교안보의 언어가 됐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안미경중 공식도 더는 그대로 작동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날 발언만 떼어 놓으면 또 하나의 국제정세 강연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신 교수의 연구 이력을 따라가면 메시지는 더 입체적으로 읽힌다. 그는 현재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윌리엄 J. 페리 현대한국학 석좌교수이며, 2001년 '한국학프로그램'을 기안하고 진행 중에 있다. 2005년부터 2025년까지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를 이끌었고, 지금은 한국·대만 프로그램과 넥스트아시아정책연구실을 맡고 있다. 스탠퍼드 공식 프로필에 따르면 저서와 편저는 27권이다.

학자로서의 업적도 크지만, 연구를 정책대화로 연결하는 장을 꾸준히 만든 점이 눈에 띈다. 민족주의에서 시작해 한미동맹, 민주주의, 북한, 이민과 인재까지 연구 주제가 넓어졌지만 질문은 한결같다. 외부 질서가 흔들릴 때 한국 사회는 어떤 내부 역량으로 버틸 것인가.

같은 동맹, 다른 계산서

2010년 저서 < One Alliance, Two Lenses >에서 신 교수는 한미동맹을 '하나의 동맹을 보는 두 개의 렌즈'로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동맹이 국가 정체성과 결부된 문제지만, 미국에서는 여러 정책 선택지 가운데 하나로 다뤄지는 경향이 있다는 분석이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감정의 무게와 정책의 우선순위가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날 강연에서 그가 개별 사안은 작아 보여도 수면 아래 쌓이면 동맹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한 대목은 이 연구의 연장선에 있었다. 거창한 공동성명보다 실무채널의 설명, 사전통보, 오해를 줄이는 소통이 신뢰를 지킨다는 얘기다.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보면 더욱 이해하기 쉽다. 동맹은 한 번 맺은 계약이 아니라 매일 갱신하는 관계라는 현실론에 가깝다.

그가 주문한 것은 맹목적 추종이 아니었다. 미국의 빅테크와 한국의 제조 역량을 결합하면 반도체와 피지컬 AI에서 한국이 '신뢰할 수 있는 협력자'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미국의 대중국 견제가 한국 첨단산업에 시간을 벌어주는 효과도 있다고 평가했다. 조선·자동차·반도체를 갖춘 한국이 미국 제조업 재편에서 드문 파트너라는 판단이다.

그런데 바로 다음 대목에서 경계가 나왔다. "중국을 배제하고 미국 기술 생태계에만 들어갈 때 한국의 장기 선택권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적 플랫폼이 시장을 열어 주는 동시에 콘텐츠와 수익 구조를 종속시킬 수 있다는 사례도 들었다. 동맹을 강화하되 기술 주권과 협상력을 통째로 넘기지 말라는 뜻으로 읽혔다. 이 양면성이야말로 단순한 '미국 편에 서라'는 구호와 그의 주장을 가르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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