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남긴 유산 찾으러 기도원을 탈출한 세 사람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를 매주 손꼽아 기다렸다. 뼛속까지 스며들 만큼 공감 가는 대사가 많은 이 작품은 콘텐츠를 만드는 평범한 이들에게 보내는 헌사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 '동만'이 모욕을 당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에 괴로웠다는 친구가 의외로 많았다.
취향은 차치하고, 그래서 이탈한 시청자도 은근히 많았다. 타인의 '고통'이나 '감정'을 정면으로 담은 스토리를 피하는 사람들이 급속도로 많아진 것. 현실 속 인간들의 삶을 다룬 서사보다 타임 리프물, 판타지 사극이 OTT와 공중파를 휩쓰는 현상은 시청자의 욕망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어쩐지, 감정을 공론화 하는 일이 우리에게 사치가 되어 버렸다.
기도원에서 탈출해 닿은 미지의 논밭들
SNS엔 자랑이 판치고, 나의 못난 부분과 고통을 이야기하는 콘텐츠는 '3인칭'으로 소비되고 있다. 자극적인 사연은 3인칭으로 가공돼 도파민과 조회수를 치솟게 하고, 1인칭 즉 개인이 직접 내면의 아픔을 꺼내 고백하는 콘텐츠는 드물어졌다. 그 자각 가운데 만난 장편소설 <우리들의 농경사회>(2026년 4월 출간)는 우리 삶의 고통을 "짐승의 내장"처럼 시원하게 까발려 독자를 감각케 한다.
1인칭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기도원에서 탈출한 세 사람이 논밭이 펼쳐진 오지에서 노동하며 "자신의 쓸모를 발견"하는 이야기. 농사를 지으며 삶을 회복하는 단순한 이야기는 아니다. 작가는 오늘날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노동이 무엇인지 질문을 건넨다.
문복과 선지, 주인공 '나'는 기도원에서 함께 자란 사이. 얼마 전 죽은 기도원 동기 '주경'이 남긴 유산이 있는 산속으로 셋은 다마스를 끌고 도주한다. 그곳에서 이들은 '구순태'라는 말이 짧고 강직한 어른을 만나 땅을 고르고,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둬들이는 일에 합류한다.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는 이곳에서 유튜브를 보는 대신 콩을 고르며 '기도하는 사람'에서 '일꾼'이 되어간다.
기도원에 갇힌 채 한 일이라곤 기도와 포교 활동이 전부였던 세 사람. 12월 소한부터 11월 대설까지 구순태의 '농경사회'를 살아낸다. 소설의 묘미는 모든 이야기의 챕터가 계절 변화를 나타내는 '절기'로 되어 있다는 것인데, 가령 1월 우수엔 "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다닌다", 6월 소서엔 "썩은 풀이 반딧불이 된다" 등 목가적인 소제목들이 독특해 소설이 더욱 궁금해진다.
그러나 속지 마시라. 목차는 '페이크'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처럼, 자연의 풍요 속에서 먹고 일하고 쉬는 생태적 서사가 펼쳐질 것 같지만 소설은 추적과 죽음, 생존이 난무하는 서스펜스가 또아리를 틀고 독자를 긴장케 한다. "아주 단순한 일들이 우리를 버티게" 하는 농부의 계절 아래, 이들은 '겨울'로 상징되는 기도원에서 끓는 오지의 '여름'으로 삶터를 옮겨와 생존의 몸부림을 시작한다.
논밭엔 있고 물류센터엔 없는 것, '계절과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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