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정유시설 잇단 타격에…원유 풀려도 휘발유값 안 잡힌다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호르무즈해협을 빠져나온 원유가 늘었지만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이란의 중동 정유시설 공격과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소 타격, 폭염이 겹치면서 전 세계 정유시설의 하루 원유 처리량이 이란 전쟁 발발 전보다 840만배럴 줄었기 때문이다.
CNN은 14일(현지시간) 세계 에너지 시장의 병목이 원유 공급에서 정유시설 가동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JP모건은 전 세계 정제연료 생산량이 이란 전쟁 발발 전보다 10% 감소한 것으로 추산했다.
원유는 그대로 자동차나 항공기의 연료로 쓸 수 없다. 정유시설에서 휘발유·경유·항공유 같은 연료와 아스팔트·석유화학 원료 등으로 가공해야 실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란의 중동 정유시설 공격과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에너지시설 공습으로 세계 곳곳의 정유시설이 가동을 멈추거나 처리량을 줄였다. 폭염으로 냉각시설의 효율까지 떨어지면서 정유시설의 처리량 회복도 더뎌졌다.
나타샤 카네바 JP모건 글로벌 원자재 리서치 책임자는 “문제는 더 이상 원유 공급이 회복되느냐가 아니라 전 세계 정유시설이 들어온 원유를 얼마나 빨리 처리할 수 있느냐”라고 말했다.
호르무즈해협의 원유 수송은 아직 정상화되지 않았다. 다만 최근 몇 주 동안 약 2억배럴의 원유가 해협을 빠져나왔고, 중동의 원유 생산도 지난 5월보다 하루 400만배럴 늘었다. 그러나 미국 주도의 대이란 해상 봉쇄가 재개되고 중동의 군사적 충돌이 다시 격화하면서 유조선 통항 증가세는 꺾였다.
원유 수송이 일부 회복됐지만 중동의 정유시설 상당수가 공격을 받아 정상 가동 여부는 불투명하다. 중동의 정유능력은 하루 1170만배럴에 달하지만, JP모건은 이란이 전쟁 중 이 지역 정유시설 30곳을 공격한 것으로 집계했다. 시설별 피해 정도와 재가동 가능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전쟁 기간 공급 감소와 가격 상승으로 석유 소비가 줄자 정유업체들도 가동량을 낮췄다. 이 때문에 원유 공급이 회복되더라도 연료 생산을 곧바로 이전 수준으로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은 석탄발전 확대와 전기차 보급 등을 배경으로 정유 처리량을 하루 300만배럴가량 줄였다. 비축유를 방출해 페르시아만산 원유 부족분을 메우는 한편 휘발유와 경유의 생산·수출도 대폭 축소했다. 이 여파로 동남아시아의 연료 부족은 더욱 심해졌다. JP모건은 호르무즈해협의 원유 수송이 안정됐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 중국이 정유시설 가동을 본격적으로 늘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중동의 석유제품 수출이 급감하자 미국은 사실상 대체 공급처가 됐다. 미국 정유업체들은 유럽에 항공유를, 호주와 아시아에는 경유를 더 많이 공급했다. 그만큼 미국 내수시장에 돌릴 휘발유·경유·항공유의 생산 여력은 줄었다.
미국의 빠듯한 정유 처리능력도 문제를 키웠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높은 비용과 환경규제 등으로 정유시설 폐쇄가 이어졌다. 미국에서 대규모 정유소가 새로 건설된 것은 1977년 루이지애나주 개리빌 정유소가 마지막이다.
여기에 세계 2위 경유 수출국인 러시아의 수출 중단까지 겹쳤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으로 주요 정유소가 잇따라 가동을 중단하고 국내에서 연료 부족이 심해지자 지난주 경유 수출을 금지했다. 주유소 앞에는 차량이 길게 늘어섰고 일부 지역의 연료 가격은 최근 며칠 새 50% 상승했다.
JP모건은 전 세계 정유 처리량 감소분 가운데 약 5분의 1이 러시아의 가동 차질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산했다. 우크라이나의 정유시설 공격 전 러시아의 경유 수출량은 하루 80만배럴로 세계 교역량의 약 12%를 차지했다. 경유 선물가격은 최근 3주 동안 20% 상승했다. 카네바는 “시장의 시선은 호르무즈해협에 쏠려 있지만, 세계 정유 수급을 좌우할 핵심 변수는 이제 북쪽으로 약 3200㎞ 떨어진 러시아 정유시설의 가동 상황일 수 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yunghp@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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