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인 적산가옥에 피어난 능소화, 박완서의 문장이 떠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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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전령, 능소화를 찾아서
매화가 봄의 전령사라면, 여름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꽃은 능소화가 아닐까 한다.
여름의 초입에 들어 선 6월, 24일 아침 요즘 한창인 능소화를 보러 자인의 적산가옥을 찾았다. 경산 자인면의 한 골목, 빛바랜 세월을 온몸으로 안고 선 오래된 이층 적산가옥 앞에서 발걸음이 멈추었다. 시간이 켜켜이 내려앉은 회색 외벽을 온통 뒤덮으며,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단 한 그루뿐인데도, 낡은 창문 위로 녹슨 지붕 너머로 꽃송이들이 흘러내리듯 번지며 거리 전체를 연한 주황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벽 한편에는 투박한 솜씨로 그려진 꽃 그림과 함께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능소화가 꽃피는 예쁜 집"
그러나 이 풍경은 예쁘다는 말로 다 담기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낡은 창문이 주는 깊은 어둠과 불꽃처럼 타오르는 주황빛 꽃의 대비는 어딘지 모르게 아련하고 서글픈 분위기를 자아낸다. 가슴 어딘가를 살짝 쥐어짜는 듯한 감각. 이 익숙한 감정을 어디선가 만난 것 같은데, 언제였을까?
박완서의 문장을 만나다
그 순간, 문득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이 떠올랐다. 책을 찾아보니, 소설의 첫 장 「허무의 예감」에서 능소화를 묘사한 장면이 있었다. 소설에서 주인공 영빈은 첫사랑 현금의 이 층집 베란다를 타고 오르는 능소화를 바라보며 처음으로 허무라는 감정을 예감한다. 그 꽃이 '지나치게 대담하고 눈부시게 요염하여, 쨍쨍한 여름날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괜히 슬퍼지려 했다'고. 그 감정이 생애 처음 느껴본 어렴풋한 '허무의 예감'이었다고.
소설 속 문장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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