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끝내 자신을 공익활동가라고 부르지 않았다
"나는 공익 활동가가 아닙니다."
류 국장은 인터뷰 내내 그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처음에는 겸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시간 남짓 그의 삶을 따라가다 보니, 그 말은 자신을 낮추는 표현이 아니라 삶의 출발점을 설명하는 문장이었다.
그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을 품고 시민단체의 문을 두드린 사람이 아니었다. 남편을 잃고 두 아이를 먹여 살려야 했던 마흔 살의 가장이었다.
류 국장의 첫 직장은 금융기관이었다.
1990년대 초, 남성 직원들은 양복값을 지원받았고 여성 직원들은 제복을 입었다. 창구는 여성들의 자리였고 승진은 대부분 남성의 몫이었다.
"권위적인 상사한테는 많이 혼났어요."
성과를 어렵게 만들어도 휴가를 다녀온 상사가 자기 몫이라고 가져가려 했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에는 휴가 기간에 생긴 문제의 책임이 그의 이름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는 그냥 넘기지 않았다.
"그게 왜 제 책임입니까?"
지금의 류 국장은 당시 자신을 '뾰족한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눈앞의 불합리를 외면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결혼과 출산은 그를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첫아이는 잠을 자지 않았고 먹지도 않았다. 밤이면 아이를 안고 거실을 서성이는 날이 이어졌다.
"동서가 그러더라고요. 형님은 아이 낳기 전에는 차갑고 예민했는데, 많이 둥글어졌다고."
아이를 키우는 시간은 아이만 자라는 시간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마음도 함께 자라고 있었다.
그러나 삶은 또 한 번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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