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와 미용실 사이, 나를 통째로 무장해제 시킨 ' 7월의 도서관 피서'

치과 진료를 마치고 나오니 7월 대프리카의 열기가 훅 끼쳐왔다. 미용실 예약 시간까지는 두 시간 남짓의 애매한 여유가 생겼다. 무더위를 피해 들어간 대구 구수산도서관은 시원했다. 2층 문학실 "여행하는 문장들" 테마 코너를 둘러보다 소다수 빛깔을 품은 시집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2022년 신춘문예로 등단해 문단의 기대를 모은 고선경 시인의 첫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2023)였다. 그렇게 우연히 시작된 책으로의 여행은 무더운 여름날의 완벽하고 사치스러운 피서가 되었다.
"이거 딱 내 이야기잖아"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건 〈건강에 좋은 시〉였다. 시 속에 나오는 화자의 엄마는 늘 무언가의 효능에 골몰한다. 블루베리 효능, 토마토 효능, 치자 효능을 검색하는 엄마를 보며 시인은 말한다. "나는 다정의 효능이나 / 시의 효능에 대해 골몰한다"고. 하지만 이내 "내 시에 비타민이나 / 식이섬유가 함유되어 있지는 않아"라 하더니, 마지막에 가서 슬그머니 진실을 폭로한다. 엄마가 블루베리를 먹는 진짜 이유는 눈에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블루베리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 대목을 읽는 순간 "이거 딱 내 이야기잖아!" 했다. 그렇다. 우리는 매 순간 대단히 합리적이고 거창한 명분을 찾아 그것을 그럴싸하게 읊어대지만, 결국 진실은 아주 단순하다. '그냥 좋아서,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 시인은 다정과 시의 효능에 골몰한다는데, 명분에 연연하는 나는 아직 시인이 되려면 멀었구나 싶었다.
〈돈이 많았으면 좋겠지〉의 "매일이 소진의 나날"이라는 고백은 동시대 청춘들의 쓸쓸한 자화상을 보여주는 듯했다. 생각해보면 내게도 그런 청춘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대체 어디에 어떻게 소진해야 할지 몰라 참 많이도 난감해하고 서성였다. 하지만 흘러간 시간의 모퉁이를 돌아 퇴직을 맞이한 지금의 나는 어떤가. 이제는 소진할 기력조차 아껴가며 하루 분량의 삶을 조금씩 비축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흘러넘치던 청춘의 열정과 아껴두어야 하는 노년의 비축이 시의 행간 사이에서 멋쩍게 교차했다.
생각을 배경음악처럼 깔고, 화분 속에 생각을 기른다
시인의 문장은 유쾌하고 능청스럽다. 〈멜론 소다와 나폴리탄〉에서 시인은"음악이 배경이 될 수 있다면 / 생각도 배경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묻는다. 음악처럼 은은하게 삶의 배경으로 깔아두는 생각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복잡하고 머리 아픈 계산이나 고뇌 대신, 그저 불어 터진 스파게티처럼 가볍게 끊어져 버리는 느긋하고 유쾌한 생각들을 배경음악처럼 깔아두고 살고 싶다.
심지어 〈멜론 껍질에 남은 향기와 과육을 갉아 먹는 벌레들〉에서는 "아내와 내가 기르는 화분 속에는 식물이 없고 생각이 있다"고 고백한다. 흙을 채우고 물을 주며 파릇파릇한 이파리 대신 '보이지 않는 생각의 싹'을 키워내는 부부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어쩌면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일상의 화분들이야말로 각자의 머릿속에서 자라나는 온갖 상상과 성찰의 모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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