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가 한 마디도 없네? 동작으로 다 설명되는 이 공연의 특별함

"움직임에는 사투리가 없습니다."
지난 11일 만난 창작집단 싹의 손진영 대표는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고향이 경상도인 그는 한때 표준어 대사를 중시하던 연극 현장에서 언어의 어려움을 느꼈다. 그러나 몸은 달랐다. 몸짓은 지역의 억양을 따지지 않았고, 움직임은 국적과 나이, 언어를 넘어 관객에게 닿았다. 그가 마임, 현대무용, 외줄타기, 차이니즈 폴, 에어리얼 로프, 파쿠르까지 다양한 신체 언어를 익혀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감각은 창작집단 싹의 넌버벌 오브제 인형극 〈환상공간〉(6월 12~13일, 아르코꿈밭극장) 안으로 깊이 스며들었다. 이 작품에서 말은 많지 않다. 대신 배우의 몸, 인형술사의 손, 악사의 라이브 연주, 천과 오브제가 이야기를 끌고 간다. 조금 전까지 천 조각이었고, 물건이었고, 오브제였던 것들이 어느 순간 인형이 되고, 생명체가 되고, 기억 속 깊은 곳을 건드리는 존재가 된다.
관객의 머리 위로는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커다란 천이 물결처럼 출렁이고, 고래는 무대 위를 유영한다. 아이들은 사물이 살아나는 순간을 바라보며 상상력을 열고, 어른들은 오래 접어두었던 동심과 위로의 감각을 다시 만난다. 2026 아르코꿈밭시즌을 통해 관객과 만나는 〈환상공간〉은 그렇게 일상을 환상으로 바꾸는 공연이다.
잠시마나 숨 쉴 공간 위해
〈환상공간〉은 기후위기, 전쟁, 경제난, 팬데믹 이후의 단절감 속에서 지친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숨 쉴 수 있는 시간을 건네고자 만들어졌다. 어린이에게는 상상력을, 어른에게는 잊고 있던 동심을 건네고 싶다는 바람도 그 안에 담겨 있다. 손 대표는 이 작품의 출발점을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설명했다. 창작집단 싹이 결성된 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사회 전체가 깊은 애도에 잠겼고, 축제와 공연도 줄줄이 멈췄다. 손 대표 역시 예술활동을 잠시 멈췄다. 그러나 침묵 속에서도 그는 질문을 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이 할 수 있는 무엇이 있지 않을까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 질문은 2020년 코로나19를 지나며 다시 구체적인 형태를 얻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거리를 두어야 했고, 예술 역시 관객과 직접 만나기 어려웠던 시기였다. 하지만 손 대표는 바로 그때 예술이 줄 수 있는 치유와 위로, 일상을 잠시 벗어나는 꿈과 희망을 떠올렸다. 접촉이 적고, 대사가 없어도 가능하며,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도 공연할 수 있는 장르. 그렇게 인형극이 그의 앞에 놓였다.
단순히 상황에 맞는 형식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박성찬 연출과 함께 인형술, 움직임, 제작 과정을 본격적으로 연구했다. 2020년 온라인 박스씨어터 형식의 첫 인형극이 만들어졌고, 이후 그 실험은 2021년 〈환상공간〉으로 확장됐다. 2년간의 연구와 제작, 이후 3년간의 성장 과정을 거쳐 작품은 2025년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코리안 시즌에도 참여했다.
손 대표가 〈환상공간〉을 통해 관객에게 주고 싶은 감각은 분명하다. 그는 공연을 보고 나온 관객이 "마치 목욕탕을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일상의 때를 벗기고 자신의 순수한 모습을 발견했으면 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는 상상력으로, 어른들에게는 동심으로 가 닿는 경험이다.
이를 위해 〈환상공간〉은 단순히 '보는 인형극'에 머물지 않는다. 작품은 옴니버스 형식의 넌버벌 오브제 인형극이다. 세 개의 에피소드가 이어지고, 말보다 움직임이 앞서며, 설명보다 이미지와 리듬이 먼저 관객을 끌어당긴다. 인형극이지만 인형만 등장하는 공연도 아니다. 배우의 몸, 악사의 라이브 연주, 인형술사의 장난스러운 움직임, 오브제의 변화가 함께 무대를 만든다.
공연은 악사들의 라이브 연주와 인형술사의 익살스러운 움직임으로 시작된다. 인형술사들은 마치 '환상의 요정'처럼 관객 곁으로 다가가고, 유연한 몸짓과 장난으로 극장 안의 공기를 바꾼다. 이들은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허물며 관객을 작품 속으로 초대한다. 관객은 더 이상 바깥에서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환상을 함께 구성하는 일부가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조명이 어두워지고 인형극이 시작된다. 오브제는 배우의 손과 몸을 통과하며 생명력을 얻는다. 평범한 사물이 하나의 인형이 되고, 인형은 다시 생명체가 된다. 관객은 그 변화의 과정을 바라보며 잠시 일상의 고민을 내려놓는다. 디지털과 미디어가 익숙한 시대에, 손과 몸으로 빚어낸 아날로그적 환상은 오히려 더 선명한 감각으로 다가온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는 '물'이다. 에피소드 사이의 전환도 단순한 장면 교체가 아니라 하나의 체험으로 설계됐다. 대형 바다 천이 객석 위로 펼쳐지고, 관객은 머리 위로 출렁이는 천을 바라보며 마치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감각을 경험한다. 물은 장면을 잇는 장치이자, 관객의 마음을 씻어내는 상징처럼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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