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 캠퍼스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PADO]
미국 동부 지식인들이 즐겨 읽는 애틀랜틱 매거진의 5월 17일자 기고문에서 데이비드 브룩스는 미국 대학에서 변화의 움직임이 보인다고 기뻐합니다.
물론 아직은 고질적인 병폐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미국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대학이 취직을 위한 예비기관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역사를 통해 모든 학교들의 고민거리였을 것 같습니다.
먹고 살기 위한 공부냐 진선미(眞善美)를 추구하고 인격도야를 위한 공부냐라는 '빅 퀘스천'은 어차피 해결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무엇이 옳냐가 아니라 비중의 문제일 것 같습니다.
물론 두 가지가 함께 추구될 수 있다면 최선이겠죠.
이 기사에서 눈에 띄는 것 중 하나가 컬럼비아대학교 등이 만들어두고 있는 '코어 커리큘럼'입니다.
한국의 대학들이 도입하면 좋을 제도입니다.
어느 사회에서 공론(公論)이 발달하려면 함께 읽는 텍스트가 있어야 합니다.
공론이 이뤄지려면 같은 것을 보되 서로 다른 관점이어야 합니다.
서로 다른 것을 보고 있으면 대화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같은 관점이면 대화가 흥미를 잃습니다.
그런 점에서 대학들이 여러번 읽어도 좋을 양서를 고전(영어 classic의 어원은 class입니다)으로 지정해 학생들에게 읽혀야 합니다.
한국의 대학들이 동서양 고전들을 50권 정도만이라도 지정해 1, 2학년 과정에서 읽고 토론하게 한다면 한국의 공론장을 풍요롭게 만들 것 같습니다.
한국의 대졸자들이 사마천의 , 플라톤의 , 투키디데스의 , 크세노폰의 , 유성룡의 , 마키아벨리의 , 벤자민 프랭클린의 , 아담 스미스의 을 한번이라도 읽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풍부한 지적 생활, 공적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데이비드 브룩스에 따르면 다행히도 미국 대학에는 이런 인문주의적 움직임 내지 반성이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회의(scepticism)가 없이 주류 학계가 정답처럼 적어주는 진보적 이데올로기 내지 말(jargon)들을 외워 시험 답안지로 제출하거나 입사 인터뷰에서 써먹는 관행들이 최근들어 비판을 받기도 하고 자체 반성을 통해 수정되고 있다고도 합니다.
공론의 세번째 요소는 회의(懷疑)입니다.
즉, 회의(懷疑) 없인 회의(會議)가 불가능합니다.
확신에 찬 사람들이 모여 회의해봤자 그건 생산적이지 않은 논쟁일뿐입니다.
공론은 서로 무지하고 부족한 사람들끼리 모여 머리를 맞대는 작업입니다.
고전을 함께 읽고 함께 생각하고 회의하는 훈련과정을 한국의 대학들도 도입해야 할 것입니다.
대학이 직업학원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그 본래의 가치인 인문주의적 요소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미국 주요 대학들의 '코어 커리큘럼'은 좋은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기사 전문은 PADO 웹사이트(pado.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