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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근의 헤디트] 헤리티지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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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근의 헤디트] 헤리티지의 시간

[지디넷코리아]세계가 K-컬처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이야기, 오래된 시간의 결이 담긴 헤리티지에 있습니다.

전통을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읽고 디지털 기술과 예술적 상상력을 더할 때, 문화자원은 공연과 전시, 도시와 공간, 콘텐츠와 산업의 언어로 확장됩니다.

정책과 현장, 기술과 예술이 만나는 접점에서 한국다움이 오늘의 콘텐츠와 경험으로 어떻게 살아나는지를 이창근 칼럼니스트와 함께 짚어봅니다. [편집자주]7월 19일 부산에서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개막한다.

대한민국에서 처음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다.

세계유산의 신규 등재와 기존 유산의 보존상태를 심의하는 국제회의이지만, 이번 부산 회의의 의미는 회의 운영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국이 유산을 어떤 말로 설명하고, 어떤 경험으로 남기며, 무엇을 다음 세대와 나눌 것인지를 세계 앞에서 보여주는 자리다.지난해 이 회의의 유치 과정을 바라보며 붙들고 있던 질문이 있다.

우리는 세계유산을 보유한 나라로 남을 것인가, 세계유산을 경험하게 하는 나라로 기억될 것인가.

국제회의를 매끄럽게 운영하는 나라는 많다.

그러나 한 장면으로 오래 남는 나라는 많지 않다.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의 의미는 회의가 차질 없이 끝나는 데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부산을 찾은 세계인이 한국을 어떤 문화적 장면으로 기억하느냐에 달려 있다.대한민국은 세계유산, 인류무형유산, 세계기록유산을 균형 있게 축적해온 나라다.

그러나 세계유산강국의 다음 질문은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가’가 아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함께 읽고, 어떻게 경험하게 하며, 어떻게 기억되게 할 것인가’다.

세계유산은 과거의 훈장이 아니라 인류가 함께 지키기로 한 미래의 약속이기 때문이다.이번 회의의 의미는 준비 과정에서 이미 드러났다.

대통령 주재 범정부 보고회를 거치며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는 국가유산청의 전문성을 중심으로 관계부처와 부산시의 협력이 결합된 국가적 문화외교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문화외교, 관광, 안전, 콘텐츠, 지역경제, 도시브랜드가 하나의 흐름 안에서 움직이게 된 것이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회의장과 동선, 의전과 안전, 대한민국관과 부대행사, 도시 연계 프로그램을 맞춰온 준비기획단과 국가유산청, PCO를 비롯한 준비 관계자들의 시간이 이제 벡스코와 부산 전역에서 실제 경험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여기에 빙그레, 데브시스터즈, 신세계, 한국관광공사, 저스피스재단 등 공식 민관협력기관 18곳의 참여가 더해졌다.

이번 회의는 행정이 주도하고 민간이 힘을 보태며 도시가 함께 움직이는 협력형 문화외교의 장으로 확장되고 있다.이 점에서 부산 세계유산위원회는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함께 누리는 창의적 문화국가’ 기조 속에서 문체부의 K-컬처 세계 확산 전략과 국가유산청이 준비해온 K-헤리티지 가치 확산이 만나는 자리로 읽힌다.

K-헤리티지는 K-컬처의 뿌리이자 K-콘텐츠의 원천이다.

부산은 그 뿌리와 원천을 세계의 언어, 도시의 감각, 미래세대의 경험으로 풀어내는 무대가 된다.핵심은 대한민국관(K-Heritage House)이다.

대한민국관은 정부기관 6개, 지방정부 14개, 민간기관 15개 등 총 35개 기관이 참여한다.

단순한 전시 부스의 집합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세계유산 보존 노력과 국가유산의 가치를 세계에 보여주는 공간이자, K-헤리티지를 오감으로 경험하게 하는 현장이다.대한민국관의 짜임도 흥미롭다.

유산의 과거·현재·미래를 보여주고(Heritage Archive), 살아있는 무형유산을 다루며(Living Heritage), 첨단 기술과 만난다(Heritage Future).

또 모두가 함께 즐기는 하나의 동선(Collaboration Zone)도 있다.

한국 유산을 목록처럼 늘어놓는 방식이 아니다.

시간과 사람, 기술과 참여를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낸 구성이다.처용무와 동래학춤, 영산재와 수륙재는 살아 있는 무형유산의 장면이다.

수문장 근무와 왕가의 산책은 조선왕실 궁중문화의 기억을 오늘의 현장으로 불러내는 재현의 장면으로, 관람객이 한국 유산의 감각을 가까이 마주하게 한다.

세계인이 오래 기억하는 것은 규모가 아니라 장면이고, 장비가 아니라 이야기이며, 정보가 아니라 감각이다.

국가유산청이 준비한 대한민국관의 힘은 바로 그 감각을 정책의 언어로만 두지 않고, 관람객이 직접 마주하는 경험으로 옮겨놓았다는 데 있다.세계유산위원회의 본질은 심의와 책임이다.

이번 회의에서도 위험목록 보존현황, 등재유산 보존현황, 신규 등재 신청이 다뤄지고, 「한국의 갯벌」 2단계 확대 등재 심사도 예정돼 있다.

대한민국관과 부대행사는 이 엄정한 국제 심의의 바깥에 덧붙은 장식이 아니다.

세계유산의 가치와 책임을 시민과 세계인이 함께 이해하도록 돕는 해석의 장치다.특히 갓일·나전장·궁시장 등 국가무형유산 전통기술 보유자의 시연과 체험은 이번 회의의 결을 한층 깊게 만든다.

세계유산이 건축과 자연, 장소의 기억이라면 무형유산은 사람의 손과 몸, 기술과 전승의 시간이다.

갓을 만들고, 나전을 새기고, 활과 화살을 다듬는 과정은 한국 유산의 섬세한 미학을 보여주는 동시에 유산이 오늘도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증명한다.

유산은 보존될 때 남지만, 사람의 손을 거쳐 다시 경험될 때 살아난다.청년전문가 포럼과 현장관리자 포럼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유산은 오래된 장소이지만, 그것을 지키는 언어는 늘 새로워져야 한다.

그 언어를 만드는 것은 청년이고, 그 언어를 실천하는 것은 현장관리자이며, 그 언어를 경험으로 펼치는 것은 도시다.

반구천의 암각화 현장답사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등재 이후의 과제는 보존과 활용, 물 관리와 지역사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국제기구와 현장을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를 국제사회와 함께 논의하는 것은 세계유산 책임국가로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분명한 태도다.부산은 단순한 개최지가 아니다.

피란수도의 기억과 해양도시의 역동성, 영화와 관광, MICE의 기반을 함께 가진 도시다.

회의는 벡스코에서 열리지만, 세계유산의 경험은 부산의 전시관과 거리, 영화관과 야행, 해양 프로그램과 지역 투어 속으로 확장된다.

유산은 장소에 머물 때 보존되지만, 도시의 경험으로 재해석될 때 비로소 기억된다.공식 엠블럼이 우리나라 최초 세계유산인 종묘 정전의 기와지붕을 모티브로 삼고, 세대와 국가, 사람 사이의 연결·평화·협력을 말한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이번 회의의 핵심은 보유가 아니라 연결에 있다.

세계유산은 어느 한 국가의 소유물이 아니라 인류가 함께 지키는 약속이기 때문이다.이제 부산은 준비의 시간이 기억의 시간으로 바뀌는 현장이다.

대한민국관은 그 경험의 공간이고, 청년전문가 포럼과 현장관리자 포럼은 그 경험의 미래이며, 반구천의 암각화와 한국의 갯벌은 그 책임의 현장이다.

개막 이후 발표될 부산선언이 이 흐름을 보존, 협력, 참여적 관리, 미래세대의 언어로 압축해낸다면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는 성공적인 국제회의를 넘어 한국 국가유산 정책의 전환점으로 기억될 수 있다.세계유산은 과거의 영예가 아니라 미래의 약속이다.

그 약속은 회의장에서만 완성되지 않는다.

한 나라가 유산을 어떻게 해석하고, 도시가 그것을 어떤 경험으로 펼치며, 세계인이 어떤 장면으로 기억하느냐에 따라 세계유산의 시간은 달라진다.

부산에서 열리는 K-헤리티지의 세계 무대가 대한민국을 ‘잘 치른 나라’를 넘어 ‘잘 기억되는 나라’로 남기기를 바란다.

유산은 콘텐츠이고, 경험은 도시의 경쟁력이다.

이번 부산의 시간이 한국 국가유산 정책의 품격을 세계에 보여주며, K-헤리티지가 K-컬처의 깊이로 확장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헤디트(HEDIT) : Heritage(문화자원) + Digital(첨단기술) + Art(예술창작)필자 이창근예술경영학박사(Ph.D.).

콘텐츠 디렉터이자 예술-기술 칼럼니스트다.

헤리티지랩(Heritage LAB) 소장으로서 신기술 융합을 바탕으로 지역문화자원을 경험 콘텐츠로 구현하고, 이를 장소의 명소화로 확장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2021년부터 글로벌 IT 미디어 지디넷코리아(ZDNET Korea)의 오피니언 필진으로 [이창근의 헤디트]를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미다스북스에서 펴낸 『K-헤리티지, 매력 도시 디자인』과 『우리는 왜 오래된 장소에 끌리는가』가 있다.

현재 도시 장면 설계 프로젝트 ‘명경(名景)’을 운영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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