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16' 장관 내치고 2G급 장군 남겼다…젤렌스키에 군인들 분노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수술을 앞둔 중상병까지 미하일로 페도로우 전 국방장관의 복귀를 호소하는 등 ‘드론 전쟁’을 이끈 35세 개혁장관을 사실상 해임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결정에 군 안팎의 분노가 확산하고 있다.
영국의 BBC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이 최근 개각에서 페도로우 국방장관을 재임명하지 않자 현역 군인과 부상병, 참전용사들 사이에서 당혹감과 분노가 번지고 있다.
전쟁에서 중상을 입고 수술을 앞둔 한 병사는 텔레그램에 올린 영상에서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페도로우가 국방부로 돌아와 있기를 바란다”며 “그렇지 않다면 내가 싸워온 모든 것이 헛된 일이 된다”고 말했다.
BBC 취재에 응한 군인들은 군 지휘부의 경고와 신변 안전에 대한 우려 때문에 모두 가명을 사용했다. 한 병사는 페도로우의 퇴진을 “모든 군인에게 가한 노골적인 모욕”이라고 했고, 다른 병사는 젤렌스키 정부가 독재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선에서는 정치 논쟁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다는 반응도 나왔다. 나타샤라는 병사는 거리 시위와 최전선의 현실은 너무 동떨어져 있다며 “어제 우리 진지가 다연장로켓 공격을 받아 누구도 페도로우나 골판지 팻말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BBC 취재에 응한 군인들은 대체로 페도로우의 성과를 높이 평가했다. 디지털전환부 장관을 거쳐 지난 1월 국방장관에 오른 그는 드론과 데이터, 인공지능을 우크라이나의 핵심 전쟁 수단으로 끌어올린 인물로 꼽힌다.
페도로우는 전선 부대가 러시아군을 사살하거나 장비를 파괴한 사실을 영상으로 입증하면 점수를 부여하는 ‘드론군 보너스’ 제도를 추진했다. 성과가 높은 부대에 장비를 신속히 공급하고, 전장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무기 개발에 활용하려는 구상이었다.
그는 일론 머스크를 설득해 러시아군의 비인가 스타링크 사용을 차단하도록 했고, 인공지능과 저가 요격 드론을 활용한 방공체계 발전도 이끌었다. 국방부의 복잡한 업무 절차를 전면 점검해 관료주의를 줄이는 작업도 추진했다.
하지만 소련식 상명하복 문화가 남은 군 조직은 페도로우 개혁의 가장 큰 장애물로 꼽혔다. 한 병사는 “구시대 인사들을 설득하지 못하면 그들이 개혁을 추진하는 사람을 조직에서 밀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비판의 중심에는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이 있다. 시르스키는 2022년 러시아의 전면 침공 초기 키이우 방어를 지휘해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지만, 이후 인명 손실을 가볍게 여기는 낡은 전술을 고수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군 내부의 평가가 모두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전선에서 복무하다 현재 총참모부에서 일하는 한 군인은 시르스키가 소련식 사고방식을 지녔고 러시아 군사학교를 졸업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현재 군 내부에는 그를 대신할 만한 지휘관이 없다”고 말했다.
페도로우와 시르스키의 갈등은 개각 무렵 더는 봉합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악화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두 사람이 같은 테이블에 앉기도 어려운 상태였다고 설명했고, 페도로우는 시르스키가 자신의 군 개혁을 가로막았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의 충돌은 세대와 전쟁 방식의 차이로도 비쳤다. 35세인 페도로우는 시르스키보다 25세 젊다. 군 정보기관 출신 분석가 이반 스투팍은 “페도로우가 아이폰16이라면 시르스키는 1980년대 전화기”라며 “목적은 같지만 접근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고 평가했다.
군 안팎에서는 페도로우의 퇴진으로 개혁 작업이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러시아가 가을과 겨울을 앞두고 우크라이나의 에너지망을 다시 집중 공격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가 더욱 취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반부패행동센터의 다리아 칼레니우크 대표는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페도로우가 쌓은 개혁 성과가 무너지고 과거로 돌아갈까 우려된다”며 이번 결정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리더십에도 부정적인 평가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비판자들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대중의 신뢰를 얻고 독자적으로 성과를 내는 인사들을 잇달아 해임하거나 배제해왔다고 주장한다. 스투팍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코미디언 시절 조롱했던 기성 정치인의 모습을 스스로 닮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 시위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두 반부패기관의 권한을 축소하려다 시민들의 반발에 물러섰던 지난해 시위를 떠올리게 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보안국 수장 대행이던 예우헤니 흐마라를 국방장관 대행으로 임명했지만, 시위대는 페도로우의 복귀와 시르스키의 해임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시위 규모는 당시보다 작지만 전쟁 수행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사안은 더 심각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항공정찰 자원봉사자를 훈련하는 비정부기구 창립자 마리아 베를린스카는 이번 인사가 군 개혁을 추진하는 인사들에게 보내는 경고라고 지적했다. 그는 “적을 기술로 이기기 위한 전략의 핵심 설계자가 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며 “아무리 뛰어나도 어느 순간 판에서 밀려날 수 있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yunghp@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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