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을 끝없이 질문하게 되는 소설

천명관의 <고래>를 읽었을 때의 감동은 잊을 수 없다. 처음에는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란 말인가?' 싶었다. 그런데 책을 펼치면 덮을 수가 없었다. 이야기의 방향을 알 수 없는데도 다음 장면이 궁금해 밤을 지새우게 하는 힘이 있었다. <아코디언>(2026년 6월 출간)을 펼쳤을 때도 비슷했다.
전쟁 직후 앵벌이(어린이를 악용해 구걸을 하면서 부단 이득을 얻는 행위)들의 삶을 다룬다는 것 외에는 어떤 이야기인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전쟁으로 부모를 잃거나 버림받은 아이들이 구걸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라면 이미 여러 작품에서 접한 내용이 아닌가. '이 소설은 그들의 삶을 통해 무엇을 더 보여주려는 것일까?' 궁금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소설은 곧바로 나를 한국전쟁 직후의 폐허 속으로 데려간다. 흥남부두에서 엄마와 헤어진 동이는 폭격으로 부서진 중앙우체국 앞에서 눈먼 소녀 연이를 만난다. 두 아이는 노래와 아코디언 연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만, 곧 앵벌이 조직이라는 잔혹한 세계에 들어간다. 전쟁으로 가족과 집을 잃은 아이들에게 그곳은 보호처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착취의 공간이었다.
그 중심에 양목사가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는 그는 아이들에게 '구름탄'이라는 마약을 먹여 서서히 중독 시킨다. 아이들은 배고픔과 폭력 때문만이 아니라 약물 때문에 그곳을 떠날 수 없게 된다. 이 장면을 읽으며 인간을 지배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은 폭력으로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먹을 것과 잠자리, 소속될 곳을 빼앗고 결국 자신의 의지까지 빼앗을 수 있다. 더욱 씁쓸한 것은 양목사가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한다는 사실이다. 말로는 사랑과 구원을 이야기하면서 가장 약한 아이들의 삶을 짓밟는다.
시대가 달라져도 자신의 욕망을 정당화하기 위해 신의 이름과 정의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코디언>을 읽으며 신앙은 무엇을 말하느냐 보다 어떻게 살아 내느냐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룩한 말을 한다고 해서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앵벌이들의 삶은 혹독하다. 아이들의 가치는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오는 가로 평가된다. 앞을 보지 못하는 연이, 하반신이 마비된 거북이, 깜상과 아미, 홍이와 찬이, 미키 등은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남는다. 겨울을 맞는 장면은 그들의 현실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아침마다 루핑 위에 하얗게 서리가 내리고 계곡물엔 얼음이 잡힌다. 다시 겨울이 다가온 것이다. 앵벌이들에겐 동장군 만큼 무서운 게 없었다. 그것은 매질이나 굶주림보다도 더 무서웠다. 배가 고프면 눈물이 나왔지만 추우면 눈물조차 얼어버려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82쪽)
이 문장을 읽으며 추위가 단순한 계절이 아니라 생존을 위협하는 공포였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울어서 동정을 얻어야 하는 아이들에게 눈물조차 얼어버리는 추위는 마지막 생존 수단마저 빼앗는 일이었다.
나는 따뜻한 방과 한 끼의 식사를 너무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 누군가에게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오늘 밤 따뜻하게 잘 수 있다'는 사실조차 절실한 희망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전체 내용보기 ...
이 뉴스, 어떠셨어요?
탭 한 번으로 반응 · 로그인 불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