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학생이 나랑 같은 '황씨'... 이름 들어도 몰랐던 이유

병원 대기실이다. 순번 전광판에 이름 넉 자가 뜬다.
"쑨셴루이"
옆자리의 어린이 환자가 전광판을 올려다보더니 또박또박 소리 내어 읽는다. "쑨, 셴, 루, 이." 아이 엄마가 화들짝 아이를 제지한다. "하지 마." 孫賢瑞(쑨셴루이)씨는 웃어 보인다. 아이가 무슨 잘못이겠는가. 낯선 것을 만나면 소리 내어 읽어 보는 것이 아이들이 글을 배우는 방식이다. 다만 매번, 쑨셴루이씨는 그 순간이 어색할 뿐이다.
아이는 왜 하필 그의 이름만 소리 내어 읽었을까. 그리고 엄마는 왜 황급히 아이를 막았을까. 그 이름이 대기실의 다른 이름들과 다르다는 것을, 소리 내어 읽으면 실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어른은 알기 때문이다. 전광판은 그의 순서를 알렸을 뿐인데, 동시에 그의 출신까지 게시한 셈이다.
그는 한국에서 '손현서'로 불리길 원한다. 전광판에 '손현서'가 떴다면 어땠을까. 소리 내어 읽는 아이도, 황급히 아이를 막는 엄마도 없었을 것이다. 그 석 자의 주인이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상이다. 이름을 보았을 때 국적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름 본연의 기능이 아니다.
그의 이름에도 뜻이 있다
孫賢瑞. 어질 현(賢), 상서로울 서(瑞). 현명하고 상서롭길 바라는 뜻이 담겼다. 아버지가 한 자 한 자에 바람을 담아 지어준 이름이다(孫賢瑞는 이 글에서 고안한 이름이나, 한국에 체류하는 중국인이라면 일반적으로 겪는 일이다 - 기자 주).
그런데 한국살이 20년이 다 되어 가는 그는, 이 나라에서 여전히 '쑨셴루이'다. 외국인등록증도, 은행 계좌도, 병원 차트도 모두 중국 표준어 발음을 한글로 옮긴 표기다. 외국인의 이름은 원지음(原地音), 곧 현지 발음대로 적는다는 원칙 때문이다.
2024년 행정안전부가 '외국인의 성명 표기에 관한 표준'을 시행하며 이 원칙은 더 견고해졌다. 기관마다 표기가 달라지는 혼란을 정리한다는 취지는 좋았다. 다만 한자 이름의 주인에게 한국식 독음(讀音)이라는 선택지는 없다. 1편에서 본 한글 이름 병기 제도는 동포와 재한 화교에게만 열려 있어, 중국에서 온 한족인 그는 제도 밖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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