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그리기만 120여 점, '내 첫 책'을 위해 한 일

택배 상자를 열자 선명하게 내 이름이 인쇄된 책 열 권이 눈에 들어왔다. 감격과 설렘이 온 손가락 끝부터 온몸 구석구석의 혈관으로 퍼져 흐르는 듯했다. 동시에 떠오른 것은 고등학생 시절의 교실이었다.
그때 나는 열여덟 살에 나갔던 백일장 대회를 끝으로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해 산업디자인과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되는 동안 글쓰기는 항상 뒷전이었다. 아니, 선택지에도 없었다는 말이 옳겠다. 내게 그것은 사치라고 느낄 만큼 시간적, 정신적인 여유가 절대적으로 없었기 때문이다. 간혹 휴대폰 메모장에 그날 그날의 생각을 적었던 것도 집필 활동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거의 20년의 시간이 흘렀다.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별안간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치솟았다. 없던 여유가 생긴 것도 아니었고,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것도 아니었다. 여름철 봉숭아꽃의 씨방이 톡 하고 터지듯, 그저 갑작스레 찾아온 충동과도 같은 것이었다.
팔이 닿지 않는 등 한가운데가 간지러워 견딜 수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배탈이 나서 당장 화장실을 찾아 달려가야 하는 사람이 된 것처럼 그 욕망은 집요했다. 외면하려 해도 사라지지 않았다. 잠들기 전에도, 출근길 버스 안에서도, 설거지를 하는 순간에도 그 생각은 계속 나를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내 이름 석자로서의 존재감과 타인의 인정이 필요했다. 내가 어깨에 둘러메고 있는 어떠한 역할로서가 아니라, 오롯이 나라는 인물로. 공인된 자격을 갖추지 않고서도 글을 쓸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AI에게 글을 쓸 수 있는 플랫폼을 물었고, 카카오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를 추천 받았다. 작가 승인만 받으면 된다는 조건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특별한 준비도 없이 무작정 신청서를 제출했다. 2025년 5월 말, 그렇게 알게 된 브런치에서 나는 생애 처음으로 '작가'라는 호칭을 얻었다.
브런치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를 작가님이라 불렀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글 몇 편 올렸을 뿐인데 작가라니. 하지만 그 호칭은 내게 낯선 희열을 안겨주었다. 어쩌면 나는 누군가가 글을 써도 된다고, 계속 써도 된다고 말해주길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자 욕심이 생겼다. 단순히 글을 쓰는 사람을 넘어 진짜 책을 낸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때부터 출판사 투고를 시작했다. 기획안을 쓰고, 출판사를 찾고, 메일을 보내고, 답장을 기다렸다. 때로는 정중한 거절을 받았고, 대부분은 아무 답도 받지 못했다.
답장이 오지 않는 메일함을 들여다보는 일은 생각보다 사람을 작아지게 만들었다. '역시 나는 안 되는 건가'라는 생각도 수없이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거의 20년 만에 다시 찾아온 글쓰기를 이번에는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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