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입술에 피가..." 광주에서 본 외국인에 감동한 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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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할아버지가 된 두 기자가 46년 전 참혹함 그 자체였던 금남로 한복판에 다시 섰다. 두 기자의 뇌리엔 1980년 5월 이곳에 있던 한 외국인이 선명히 박혀 있다. 한 기자는 카메라 렌즈에 바짝 갖다 댔던 눈의 감각으로, 다른 기자는 들것에 함께 얹었던 손의 촉감으로 그때 그 시공간을 또렷이 소환했다.
"입가에 피를 흘리며 광주 시민을 구한 고마운 친구입니다."
- 노병유 전 광주CBS 기자
"그 모습을 보고 '이건 역사다' 해서 셔터를 눌렀습니다."
- 나경택 전 <전남매일> 기자
두 기자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항쟁 중 갖은 압박 속에서도 끝까지 광주를 지켰다. 또한 두 사람이 포착한 미국인 팀 원버그(Tim Warnberg, 당시 25세)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나경택 당시 <전남매일> 기자가 보안사에 뺏겼던 사진(아래)이 약 40년 만에 공개됐을 때 그 흔적이 확실히 드러났다.
1978년 미국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 온 팀은 전남대병원 등 광주·전남 일원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마주했고 자신과 함께 일상을 이어가던 광주 시민을 위해 항쟁에 몸을 담갔다.
항쟁 초기 팀은 외국인 신분을 적극 활용해 계엄군 곤봉에 맞던 시민을 구했고 길가에 방치된 부상자를 병원에 옮겼다. 고 위르겐 힌츠페터(2016년 작고) 등 여러 외신기자가 광주로 진입한 후엔 유창한 한국어 실력으로 통역을 맡았고 광주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본인도 기꺼이 얼굴을 내놓고 인터뷰에 응했다. 항쟁 직후에도 관련 자료·증언을 동료에게 건네 5·18의 진실을 알리는 북유럽 지역의 외신보도를 이끌기도 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3월 10일과 11일 노병유(81) 당시 광주CBS 기자와 나경택(77) 당시 <전남매일> 기자를 만났다. 두 기자는 들것을 든 팀의 모습을 현장에서 목격한 이들이다. 당시 노 기자는 팀과 함께 들것을 든 채 금남로를 지나 전남도청 앞으로 이동했고 이 모습을 나 기자는 전일빌딩에서 촬영했다. 두 기자는 모두 외국인 신분으로 항쟁 복판에 있던 팀의 "용기"를 힘주어 설명했다.
최루탄 뚫고 들것 든 팀과 시민들
위 사진의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이가 팀, 하얀 의사 가운을 입은 이가 노 기자다. 사진 속 광주관광호텔(현 무등빌딩) 자리에 취재팀과 함께 선 노 기자는 손으로 얼굴을 가린 팀의 모습을 가리키며 "굉장히 어마무시"했고 "최루가스가 난무했다"며 당시 상황을 자세히 전했다.
항쟁 둘째날인 19일 오전, 취재를 마치고 광주CBS(당시 가톨릭센터에 위치, 현 5·18민주화운동기록관)로 향하던 노 기자는 최루탄을 피해 근처 외과로 피신했다. 그곳에서 노 기자는 들것에 실린 환자를 두고 병원장과 대화를 나누는 외국인을 발견했다. 그가 팀이었다. 노 기자는 "병원장한테 들어보니, 이 외국인이 혼자 환자를 부축해 왔다고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대단한 일이죠. 지금도 생각하면 감사한 것이, 그렇게 중상을 입은 사람을 보면 무서워서 접근을 못하잖아요. 그런데 그 외국인은 피를 흘리면서까지 그 사람을 부축해서 병원에 왔거든요. 병원에 우리나라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그 외국인 혼자서 (환자를) 데리고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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