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하지 않기 위해 기대는 자리, 언덕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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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로렌 지방의 시옹-보데몽 언덕은 멀리서 보면 작은 산처럼 보인다. 낮은 들판 너머로 완만하게 솟은 그 언덕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었다. 모리스 바레스의 소설 <영감이 흐르는 언덕>에서 이곳은 신앙과 역사, 지역 공동체의 기억이 서로 부딪치고 다시 만나는 상징적 공간이다.
지난 24일, 한 카페에서 <영감이 흐르는 언덕>을 우리말로 옮긴 홍순도 번역가를 만났다. 그는 박용주 번역가와 함께 이 작품을 번역했다. 두 사람은 2023년 <빅토르 위고>를 함께 옮긴 인연을 이어 이번 작업에 참여했다.
"힘들고 지칠 때 기댈 수 있는 곳"
홍 번역가는 이 책을 번역하게 된 계기에 대해 "박용주 작가님의 제안이 있었다"며 "제목에 들어 있는 '언덕'이라는 말이 오래된 기억을 불러왔고, '영감'이라는 말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그에게 언덕은 단지 지형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소를 끌고 산으로 올라가 풀을 먹이던 기억, 대학 시절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서 기댈 언덕이 변변치 않았던 시간, 그리고 인간이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 앞에서 찾게 되는 마음의 의지처가 겹쳐 있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과 고민이 있을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싶어 하지요. 그런데 도움을 받을 수 없을 때 절망하거나 포기하게 됩니다. 저에게 이 작품의 언덕은 힘들고 지칠 때 기댈 수 있는 곳을 발견하게 해준 공간이었습니다."
<영감이 흐르는 언덕>은 종교적 서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홍 번역가는 이 작품이 한 지역의 기억이 어떻게 신앙과 결합하고, 다시 제도와 충돌 하는지를 보여준다고 읽었다. 작품 속 레오폴은 지역의 역사와 조상들의 신앙, 로렌의 풍광을 새로운 신앙 공동체의 토대로 삼으려 한다. 그러나 그 열망은 거대한 로마 가톨릭 제도와 충돌한다. 홍 번역가는 "종교적 편견이 기독교의 본질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종교마다 선을 지향하지만, 제도나 제도를 운영하는 체제의 오류 때문에 많은 과오가 나타납니다. 현재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이 작품은 신앙이 지역적이고 역사적이며 일상적인 삶과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묻고 있습니다."
번역 과정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종교 용어였다. 공동 번역자인 박용주 번역가는 개신교 신자이고, 홍순도 번역가는 천주교 신자다. 같은 의미라도 개신교와 천주교에서 사용하는 어휘가 다른 경우가 적지 않았다.
"가독성도 봐야 하고, 보편적인 표현도 필요했습니다. 다만 이 작품은 가톨릭 성지와 관련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가톨릭의 특성이 드러나는 표현은 그대로 두기로 했습니다. 박용주 작가님도 작품 내용에 충실하기 위해 가톨릭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어휘 사용에 동의해 주셨습니다."
공동 번역 작업은 약 1년에 걸쳐 이어졌다. 홍 번역가가 먼저 절반 가량을 옮기고, 후반부는 박용주 번역가가 맡았다. 이후 서로의 번역을 바꿔 읽고, 용어와 문체를 조율했다. 실제 번역 못지않게 서로 교감하고 자료를 찾으며 문체의 통일성을 맞추는 데 많은 시간이 쓰였다.
책 속 언덕을 직접 찾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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