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 중도'는 실패했다...진보 정치인들이 주목해야 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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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노동당이 다시 지도자를 바꾸려 한다. 2024년 총선에서 보수당 14년 집권을 끝내고 노동당을 압승으로 이끌었던 키어 스타머 총리가 퇴진 의사를 밝혔다. 선거에서는 안정의 상징이었지만, 집권 뒤에는 영국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그 빈자리에 앤디 버넘의 이름이 떠올랐다. 버넘은 런던 중앙정치의 주류 코스에서 곧장 총리 후보가 된 인물이 아니다. 한때 웨스트민스터 정치에서 밀려난 그는 그레이터 맨체스터 시장으로서 지역 행정의 현장에서 다시 힘을 키웠다. 중앙의 엘리트 코스가 아니라 지역의 생활 문제를 붙잡고 돌아온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그의 부상은 단순한 인물 교체가 아니다.
스타머의 실패는 중도라는 위치 자체의 실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는 안정, 재정 신뢰, 시장 안심을 앞세웠다. 그 전략은 선거에서 효과가 있었다. 보수당의 혼란에 지친 유권자들에게 스타머는 위험하지 않은 선택지였다. 그러나 위험하지 않다는 사실은 정부의 방향이 되지 못했다. 정치는 시장을 놀라게 하지 않는 기술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버넘은 다른 자리에서 등장했다. 그의 정치적 자산은 웨스트민스터의 중앙정치보다 맨체스터의 생활 현장에서 만들어졌다. 버스, 주거, 물, 에너지, 지역 권한 같은 단어들이 그를 설명한다. 거창한 이념어보다 사람들이 매일 부딪히는 삶의 조건에 가까운 말들이다. 바로 그 점에서 버넘은 스타머 이후 노동당이 무엇을 다시 물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다만 지역에서 검증된 생활행정이 곧바로 더 큰 정치의 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생활의 문제를 관리하는 것과, 그 생활을 지배하는 구조를 바꾸는 것은 다른 일이다. 버넘의 길이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생활정치를 진보의 구체화로 밀고 갈 수도 있고, 생활을 말하면서도 자기 색을 줄이는 중도 관리주의로 흘러갈 수도 있다.
맘다니의 길, 생활로 내려간 진보
버넘의 갈림길을 보려면 뉴욕의 조란 맘다니를 함께 볼 필요가 있다. 맘다니는 미국 민주당 안의 진보 흐름, 특히 민주사회주의 계열과 연결된 뉴욕 시장이다. 그는 집세, 무료 버스, 보육, 식료품, 생활비 문제를 전면에 세우며 부상했다. 완성된 답은 아니다. 도시 행정의 현실 속에서 수많은 제약과 타협을 마주할 정치인이다. 그러나 적어도 생활정치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는 분명히 보여준다.
맘다니가 흥미로운 이유는 생활비를 말하면서도 그것을 생활행정의 문제로만 낮추지 않았다는 데 있다. 집세를 말하면서 주택시장과 세입자 권리를 말했다. 버스를 말하면서 공공교통을 말했다. 보육을 말하면서 돌봄의 사회적 책임을 말했다. 식료품과 생활비 문제도 개인의 절약이나 행정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가 누구에게 살 수 있는 공간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이 점에서 맘다니는 중도로 이동한 좌파가 아니다. 그는 진보를 생활의 언어로 번역한 정치인에 가깝다. 이념을 숨긴 것이 아니라, 이념이 닿아야 할 장소를 바꿨다. 진보의 말을 줄인 것이 아니라, 그 말을 집세 고지서와 버스요금과 보육 대기명단과 장바구니 앞에 가져다 놓았다.
중요한 것은 여기다. 맘다니의 정치는 생활을 말하지만, 생활에서 멈추지 않는다. 집세에서 주택 소유의 문제로, 교통비에서 공공교통의 문제로, 보육비에서 돌봄의 사회적 책임으로 이동한다. 생활의 불편을 관리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불편을 만들어내는 권한과 비용의 구조를 묻는다.
버넘이 맘다니와 같은 정치인이라는 뜻은 아니다. 두 사람이 선 곳도 다르고, 제도적 조건도 다르다. 맘다니가 초고비용 도시 뉴욕의 생활비 문제를 붙잡았다면, 버넘은 런던 밖 영국의 교통, 주거, 물, 에너지, 지역 권한을 말한다. 그러나 둘은 같은 질문을 향해 있다. 생활을 말하는 정치가 진보의 색을 지워야 하는가, 아니면 그 색을 더 구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가.
그 차이는 작지 않다. 생활을 말한다는 이유로 중도를 향해야 한다면, 생활정치는 결국 자기 색을 지우는 기술이 된다. 그러나 맘다니의 사례는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진보는 생활로 내려갈 때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매일 견디는 비용과 불안 속에서 더 분명해질 수 있다.
블레어의 길, 이기는 중도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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