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 보이콧' 방탄소년단, 'K-팝 위상' 고려해 총대 멨다(종합)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글로벌 슈퍼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내년 2월 미국 대중음악 시상식 '제69회 그래미 어워즈(Grammy Awards)'에 작품을 출품하지 않기로 29일 결정했다. 당장의 수월한 트로피를 얻는 대신, K-팝을 서구 주류 음악 시장의 경계 밖으로 격리하려는 시도에 정면으로 문제 제기를 한 파격적인 행보다.
앞서 그래미 어워즈를 주관하는 레코딩 아카데미는 지난달 제69회 시상식부터 '베스트 아시안 팝 음악 퍼포먼스(Best Asian Pop Music Performance·APMP)' 부문을 포함한 5개 신규 카테고리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APMP 부문은 아시아 시장에서 유래했거나 아시아 언어를 의미 있게 사용한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이 규정을 두고 글로벌 대중음악계 안팎에서는 "한국어로 노래하는 K-팝 아티스트는 본상(General Field)이 아닌 아시아 전용 리그에서만 경쟁하라"는 메시지로 읽힐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전 세계 실물 음반 시장을 석권하며 주류로 자리 잡은 K-팝에 별도의 울타리를 치는 것은, 포용의 탈을 쓴 '시혜성 트로피'이자 '음악적 인종차별'에 다름없다는 비판이다.
이러한 국면에서 방탄소년단의 미출품 선언은 중요한 산업적·문화적 의미를 지닌다.
방탄소년단은 올해 발매한 정규 5집 '아리랑(ARIRANG)'에 수록된 다수의 영어 트랙을 바탕으로 '올해의 앨범', '올해의 레코드' 등 본상 경쟁에 직행할 수 있는 입지에 있다. 당장의 성과만을 고려했다면 모든 부문에 출품하는 것이 유리했으나, 자신들이 지닌 기득권을 내려놓고 한국어로 노래할 후배 아티스트들이 '아시아 리그'로 격리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총대를 멘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이 같은 결단은 그간 이들이 단계적으로 일궈온 그래미 도전사(史)와도 맥을 같이한다. 방탄소년단은 지난 2019년 '최우수 R&B 앨범' 부문 시상자로 처음 그래미 레드카펫을 밟으며 문을 두드렸다. 이어 2020년에는 릴 나스 엑스와의 '올드 타운 로드(Old Town Road)' 합동 무대로 한국 가수 최초 그래미 퍼포머라는 이정표를 세웠고, 2021년에는 '다이너마이트(Dynamite)'로 한국 대중음악 가수 최초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 후보 지명과 단독 공연을 동시에 이뤄냈다.
이후 2022년 '버터(Butter)' 단독 무대에 이어, 2023년에는 '마이 유니버스(My Universe)'와 '옛 투 컴(Yet To Come)' 그리고 콜드플레이 앨범 참여작을 통해 '올해의 앨범'을 포함한 총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등 K-팝의 역사적 이정표를 연이어 써 내려갔다.
이처럼 시상자에서 퍼포머, 후보 지명으로 이어지는 단계를 차근차근 밟으며 독보적인 커리어를 구축했음에도 '21세기 비틀스'로 불릴 정도의 전 세계적 파급력에 비해 3년 연속 수상이 불발되자 그래미의 보수성과 시대역행적 '유리천장'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미국 3대 대중음악 시상식 중 하나인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A)에서 대상격인 '올해의 아티스트'를 두 차례(2021, 2026년)나 거머쥐고, 빌보드 뮤직 어워즈(BBMA) 트로피를 12개나 수집한 성과와 비교하면 그래미의 장벽은 유독 견고했다.
그간 K-팝 시장에서는 방탄소년단이 개척한 이른바 '그래미 하이웨이'를 통해 외연을 넓혀왔다. 제68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 OST '골든'이 '베스트 송 리튼 포 비주얼 미디어' 상을 수상하고, 로제와 캣츠아이가 본상 후보에 오르는 등 비서구권 음악의 수용 가능성이 확장되는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APMP 부문의 신설은 이러한 확장 흐름에 오히려 제동을 거는 결정이라는 지적이다. 그래미는 과거 R&B, 라틴, 아프로비츠 카테고리를 신설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북미 음악 시장 위협 요소가 되는 장르와 권역을 별도로 분류해 기존 주류 시장을 수성해왔다. 시청률과 화제성을 위해 K-팝 아티스트를 적극 활용하면서도, 정작 본상 진입의 장벽은 높이는 모순적 구조를 지속하고 있는 셈이다.
음악 평단에서는 그래미가 언급한 '다양성 확보'라는 신설 취지가 진정성을 얻으려면, 아시아 아티스트들이 주요 본상 후보에 지속적으로 포함되고 실제로 수상하는 성과로 이어짐을 입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그래미의 시혜성 상에 휘둘리지 않고 어떤 언어로 노래하든 세계 팝 시장의 대등한 주체로 서야 한다는 K-팝 리더 방탄소년단의 묵직한 메시지를 모두가 귀담아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특기되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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