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 적고 들어간 현장… 눈앞에서 폭탄이 터졌다

"폭파합니다."
불발탄 처리 책임자의 신호가 떨어지자 안전지대에 있던 대원들과 취재진의 시선이 폭파 지점으로 향했다. 잠시 뒤 굉음과 함께 흙먼지가 치솟았다. 불발탄 위치를 표시한 깃발과 주변에 쌓아둔 모래주머니가 순식간에 흩어졌다.
50여 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폭탄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폭발력은 줄지 않았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폭음이 가슴을 울렸다. 폭발 지점 가까이에 사람이 있었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력이었다.
기온이 36도를 넘은 지난 6월, 라오스 불발탄제거청 산하 센터 523부대가 작업 중인 비엔티안주 까시군을 찾았다. 수도 비엔티안에서 방비엥을 거쳐 비포장도로를 3시간가량 더 달려 현장에 도착했다. 겉보기에는 라오스의 평범한 농촌과 다르지 않았다. 주변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비탈은 가팔랐다.
현장 주변에는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 통제선이 설치돼 있었다. 담당자는 센터 523부대가 까시군에서 진행하는 불발탄 제거 작업을 외국 언론에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현장에 들어가기 전 출입 명부를 작성했다. 이름과 생년월일에 이어 혈액형까지 적어야 했다. 취재 현장 출입 명부에서 혈액형을 요구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센터 523부대 소속 의료진은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 신속한 응급조치를 할 수 있도록 혈액형을 미리 확인한다고 설명했다. 눈앞에 펼쳐진 땅이 평범한 밭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제야 실감 났다.
까시군 현장에는 의료진을 포함해 불발탄 탐지와 제거 업무를 맡은 대원 20여 명이 투입돼 있었다. 대원들이 작업에 앞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장비 점검이었다. 점검은 세 단계로 진행됐다. 먼저 탐지기의 전원과 기본 작동 상태를 확인했다. 이어 깊이별로 묻어 놓은 금속에 탐지기가 제대로 반응하는지 검사했다. 마지막으로 쇠와 자석 등 종류가 다른 금속 물체에 정상적으로 반응하는지 다시 확인했다.
하위사이 워라봉 불발탄 제거팀장은 "어제 정상적으로 작동한 장비도 오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지하 약 50㎝에 묻힌 금속에 탐지기가 정확히 반응하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장비 점검이 현장 투입 전 매일 거쳐야 하는 필수 절차라고 설명했다. 탐지기의 작은 이상 하나가 대원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점검을 마친 대원들을 따라 제거 현장으로 들어갔다.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발밑에 불발탄이 묻혀 있을 수 있다는 긴장감이 커졌다. 무더위에 흐르는 땀과 긴장으로 밴 식은땀이 뒤섞였다. 대원들은 각자 맡은 구역에 자리를 잡았다. 1m가량 간격을 유지한 채 탐지기를 좌우로 천천히 움직였다. 넓은 지역을 한꺼번에 훑지 않고 조금씩 전진하며 땅속의 금속 반응을 확인했다.
9년간 밤낮없이 8분마다 폭격한 양 …라오스 땅에 남은 전쟁
라오스는 세계에서 1인당 불발탄이 가장 많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은 북베트남군의 병력과 군수물자가 이동하던 '호찌민 루트'를 차단하기 위해 중립국이던 라오스에 200만 톤 넘는 폭발물을 투하했다.
이 가운데 집속탄에서 흩어진 소형 폭탄인 자탄만 2억 7000만 개가 넘었다. 이는 전투기 한 대가 24시간 쉬지 않고 8분에 한 번씩 9년 동안 폭탄을 떨어뜨리는 양이다. 라오스에 투하된 폭탄 가운데 상당수는 하나의 큰 폭탄에서 수백 개의 작은 자탄이 흩어지는 집속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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