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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돕는 사람을 돕고 있어요" 대기업 직원의 '부캐'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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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돕는 사람을 돕고 있어요" 대기업 직원의 '부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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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밤이 아직 다 걷히기 전인 새벽. 서울 충정로의 한 작은 아파트에서 알람이 울린다. 알람 소리에 눈을 뜬 최요한씨는 몸을 일으켜 이불을 정리한 뒤, 책상 앞에 앉아 한 줄의 문장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쓰다 말다를 반복했던 일기. 코로나19로 세상이 멈춘 뒤, 그는 다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아침에 한 편, 자기 전에 한 편. 생각과 감정이 문득 자신을 찾아올 때마다, 그것을 글자로 붙잡아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각과 감정이 이렇게 문득 나를 찾아오면, 그걸 글자에 가둬 놔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글로 쓰면 그 안에 딱 가둬지니까, 내 생각과 감정을 응시할수 있고 그렇게 나를 더 잘 알게돼요."

자신을 조금 더 알아가는 시간을 마치면, 그는 본격적으로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셔츠를 입고 애플워치를 차는 일련의 준비 끝에는 현관 앞에 놓인 오토바이 헬멧이 기다리고 있다. 한겨울을 제외한 봄, 여름, 가을이면 그는 모터사이클을 타고 회사로 향한다.

헬멧의 턱끈을 채우고 15분. 그는 회사에 도착한다. 서울 중구 남대문 인근에 자리한 SK브로드밴드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이직없이 계속 다니고 있다. 직급은 매니저.

그는 Web플랫폼개발팀에서 IPTV 영화·콘텐츠 추천 시스템을 기획·분석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정보수집에 동의한 고객의 시청 데이터를 분석해 "이 고객에겐 이런 걸 추천하면 좋겠다"는 추천 로직을 설계하고, 기획안·정책서·기능 정의서를 쓰고 관리하는 일이다. 최요한씨는 그런 자신을 "데이터 분석이 가능한 기획자"라고 소개했다.

야근은 개발 일정에 따라 달라진다. 한창 개발이 진행될 때는 늦게까지 일하는 날도 있지만, 개발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면 일반 회사원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로 돌아온다. 사실 코로나19 이후에는 야근 자체가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올해 1월과 2월, 회사의 개발 일정이 한창이 아니었는데도 그는 밤마다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데이터를 들여다봐야 했다.

"회사일은 아니었어요. 하하"

회사 일이 아닌데도 왜 그렇게 바쁜 저녁을 보냈는지 묻자, 그는 한장의 PPT를 꺼내보였다.

얼핏 보면 회사 보고서 같았지만, 자세히 보면 그의 말대로 회사일이 아닌 건 확실해보였다. IPTV 콘텐츠도, 고객 추천 로직도 아니었다. 서울 지도가 있었고, 지도 위에는 서울의 여러 자치구가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날씨와 시간대별 흐름을 겹쳐놓은 그래프가 있었으며, 그 위에 숫자들이 빼곡히 들어찬 상관관계 표도 있었다. 마지막 장에는 전년보다 매출이 오른 팀과 줄어든 팀이 나뉘어 표시돼 있었다.

"회사 데이터 아니고, 농부시장 마르쉐 데이터입니다."

농부시장 마르쉐는 도시의 한복판에서 농부와 요리사, 수공예가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직거래장터다. 단순히 농산물을 사고파는 시장이라기보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농사를 짓고, 음식을 만들고, 계절의 재료를 다루는지 이야기가 오가는 자리다. 생산자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농산물과 먹거리를 내놓고, 소비자는 그 물건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를 들으며 장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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