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없는 시골집 대신 언니에게로... 입맛 살린 '불 없는 오이냉국'

요즘처럼 푹푹 빠지는 더위에는 시원한 오이냉국 한 그릇이 효자다. 어릴 적 텃밭에서 갓 따온 오이를 채 썰어, 냉장고도 없던 시절 길어 온 샘물에 얼른 말아내던 냉국. 더위에 잃어버린 입맛을 언제 그랬냐는 듯 되살려주던 그 시절의 맛이다.
친정엄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후 치매가 찾아왔고, 요양원에 들어가시면서 내게 고향 시골집은 더 이상 '친정'이 아니게 되었다. 엄마가 계시지 않는 집은 친정이라 부를 수 없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시골집 발길은 끊겼고, 이제 하나뿐인 언니가 있는 집이 나의 새로운 친정이 되었다.
대구에 들러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와 언니를 함께 만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운전을 못 하는 언니를 데려다주고 돌아서려는데, 언니가 한사코 저녁을 먹고 가라며 잡았다. 무더위에 입맛을 잃어 핼쑥해진 내 얼굴을 본 언니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싱크대 앞에 섰다.
싱크대 앞에 선 언니의 좁아진 어깨와 거칠어진 손마디를 보니 가슴 한편이 아릿했다.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 우리 자매도 어느덧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 엄마를 쏙 빼닮은 언니의 옆모습에서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다.
"어릴 때, 이맘때면 엄마가 오이냉국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셨는데, 오이냉국 먹고 가라."
언니는 시원한 냉국으로 동생의 잃어버린 입맛을 찾아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가스불 한 번 안 켜고 만든 언니의 다시마 오이냉국
언니의 레시피는 간단하지만 지혜로웠다. 무더위에 지쳐 마트에 장을 보러 갈 엄두조차 나지 않던 차에, 따로 장을 볼 필요 없이 냉장고 속에 늘 구비되어 있는 평범한 재료들만으로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그야말로 '착한 레시피'였다. 큰 볼에 생수를 붓고 건다시마 몇 장을 띄워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맹물 대신 찬물에 다시마를 우려내 감칠맛을 내는 것이었다.
이어 껍질을 깐 오이를 채 썰고, 국간장과 매실청, 다진 마늘로 살짝 밑간을 해 절여두었다. 20분쯤 지나 냉장고에서 꺼낸 다시마물에서 건더기를 건져내고, 맑은 우린 물을 절인 오이에 부은 뒤 참기름, 식초, 통깨로 마무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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