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그게 중요해?"... <호프>가 폭로한 맹신하는 사람들의 최후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호프〉가 시작되면, 관객은 만나기도 전에 한 사람을 믿게 된다. 해술 아저씨(임현식 분)다.
외딴 바닷가 마을 호포항. 찢겨 죽은 소를 두고 마을 청년이 말한다. 북한에서 넘어온 호랑이 소행일 거라고. 근거는 해술 아저씨가 그랬다는 것. 그 이름 한마디에 마을은 더 따지지 않는다. 이 마을에서 '해술 아저씨가 그랬다'는 말은 신뢰와 증명을 드러낸다. "그 사람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라고 믿는다. 마을은 그를 판단을 통째로 맡겨둔 권위의 자리에 올려두었다.
영화 중반, 해술 아저씨가 처음 화면에 등장한다. 권위는 무너진다. 산에서 뭘 봤다는 이 노인은, 정작 진술은 안 하고 똥 마려웠던 이야기로 시간을 끈다. 입으로는 그것이 셋이라면서 손가락은 하나를 더 편다. 엉성하고 코믹한 노인이다.
여기에 이 영화가 감춰둔 질문이 있다. 저런 사람을 마을은 왜 떠받들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마을은 그가 '무엇을' 어떻게 말하는지 본 적이 없다. '해술 아저씨'라는 이름만 봤다. 〈호프〉는 외계 괴물의 영화이기 이전에 누가 말했느냐로 굴러가는 마을을 배경 삼는다.
두 번의 인용, 같은 반응
영화는 해술 아저씨의 이름을 두 번 활용하는데, 방식은 정반대다.
첫 번째는 가짜를 말할 때다. 소 앞에서 청년들은 호랑이를 입에 올리며 해술 아저씨를 판다. 그런데 정작 자기들끼리는 해술 아저씨에게 그런 말 들은 적 없다고 실토한다. 호랑이는 그들의 추측이었고, '해술 아저씨'는 위조로 얹은 서명이었다.
두 번째는 진짜를 말할 때였다. 해술 아저씨는 자신이 본 '그것'이 산속에 몇 마리 더 있다는 진짜 목격담을 전한다. 그의 말은 진실이었다. 다만 눈여겨볼 건 해술 아저씨의 말이 마을에 퍼지는 경로다. 그의 목격담을 받아 적은 순경 성애(정호연 분)는 범석(황정민 분)에게 옮긴다.
해술 아저씨가 한 말도 안 한 말도 마을에 돌았다. 가짜도 통하고 진짜도 통했다. 애초에 아무도 내용을 검증하지 않으니 가능했다. 화자가 미덥지 않을수록 오히려 '해술 아저씨'라는 이름의 힘만 도드라진다. 내용의 진실보다 누가 말했는지가 더 중요했다. 다음에 해술 아저씨의 말이 틀려도 마을은 똑같이 믿을 것이다. 출처만 보는 눈에 진실은 실력이 아니라 요행이다.
질문을 막는 두 개의 문장
범석은 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묻는 사람이다. 뭐가 소를 죽였나. 이 총들은 어디서 났나. 그는 출장소장답게 원인과 출처를 따진다. 그리고 그때마다 마을은 두 개의 문장으로 그의 입을 막는다.
첫 번째는 "해술 아저씨가 그랬다는데요"라며 출처를 믿을만한 사람 이름으로 특정한다. 게다가 전언인 이상 옮긴 사람은 책임에서 빠져나간다. 내가 그랬다는 게 아니라 해술 아저씨가 그랬다니까, 틀려도 내 탓이 아니다.
두 번째는 더 노골적이다. 트럭에 올라탄 범석이 "그 많은 총이 어디서 났느냐"고 따지자 무장한 노인들이 "지금 그게 중요해?"라고 되받는다. 잠시 뒤엔 순경 성애의 차 뒷좌석에 실린 무기를 보고 또 묻자 성애가 답한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민간인 노인도 공권력인 순경도 같은 문장으로 같은 질문을 막는다. 묻는 자는 완전히 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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