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세상에 없던 아카이브
해방 이후 1950년대 말까지 산악계는 인문·학술 탐사 성격의 등산 활동을 주로 벌였다.
부산에서는 주로 한국산악회 경남지부가 그 역할을 맡았고 부산청년등산구락부와 대륙산악회는 당시 생소하던 ‘등산’이라는 문화를 지역에 보급했다.
1960년대로 넘어가며 지금은 익숙해진 록클라이밍으로 불리는 기술등반이라는 새로운 등반 영역을 개척한 쟈일크럽이 창립했다.
쟈일크럽은 1960년 11월 경남 남해군 금산으로 2박 3일 창립 산행에 나섰다.
지금이야 등산로가 잘 조성돼 있고 차량으로도 정상 아래 보리암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당시에는 ‘험한 바위산’이었다.
60년도 더 지난 당시 산행의 모습은 3페이지짜리 등산보고서에 오롯이 담겼다.
세월을 이기지 못해 누렇게 바랜 보고서에는 대상지, 위치, 기간, 개념 및 특기사항, 장비, 대원 명단 등이 수기로 꼼꼼하게 적혀 있다.
이를 보면 당시 부산에서 남해로 가는 교통수단과 등반장비는 물론 산행을 대하는 산악인들의 마음가짐까지 다양한 면모를 살필 수 있다.보고서를 보면 11월 4일 오후 5시30분 남포동 ‘산유화다방’에서 만나 7시 출항하는 여수행 조선기선 여객선에 승선한다.
‘갑판에 좌석을 정함.~모두가 낭만에 젖어 추위도 잊음’이라는 기록으로 선내가 아닌 갑판에서 11월의 밤 추위를 견디며 충무시(현재 통영시), 삼천포시(현재 사천시)를 거쳐 다음 날 새벽 3시 남해 노량에 도착해 하선한 걸 알 수 있다.
부산에서 장장 8시간이 걸린 뱃길이다.
남해읍을 거쳐 상주에 도착한 대원들은 이른 오후 금산 상봉에 올라 록클라이밍에 나섰다.
야영한 뒤 일출을 보고 하산한 이들은 왔던 길을 되짚어 노량에서 오후 3시30분 여객선에 승선, 밤 11시10분에 부산에 도착해서는 ‘피곤한 얼굴로나마 정다웁게 해산’한다.최근 국내 산악 활동이 태동한 1900년대 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내에서 발행된 산악 자료 1만2900여 종을 디지털화한 ‘한국산악아카이브’가 개통했다.
이 아카이브는 국내 산악 관련 단체들이 활동 과정에서 발간한 회보, 등반계획서, 교재, 행사 자료집은 물론 기록물 발간을 위한 육필 원고, 산악인끼리 주고받은 업무 협조 편지 등 1차 기록물이 총망라됐다.
기록물의 스캔 작업량만 해도 약 120만 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다.
쟈일크럽의 활동사를 담은 등산보고서도 이 아카이브에 등재돼 있다.
아카이브에는 쟈일크럽을 비롯한 부산 지역 산악회의 1980년대 해외 원정 보고서 등 지역 산악 활동의 면모를 살필 자료가 실려 있다.
서승일 성산 오점량 등 부산 지역 산악인들이 200자 원고지에 또박또박 눌러쓴 육필 원고도 이채롭다.시대를 뛰어넘어 지역과 단체의 경계를 허물고 한국 산악 자료 전부를 아카이브화한 작업은 (사)부산산악포럼이 주도하고 전국의 산악인과 산악단체가 협력해서 이뤄졌다.
외국에서는 스위스산악회가 연감 및 관련 문헌 7만 쪽을 디지털화했고, 영국산악회의 발간물 보고서 서신 일기자료 아카이브, 뉴질랜드산악회·오스트리아산악회의 연보 아카이브 등 사례도 있다.
하지만 문화·체육 등을 막론하고 단체 차원이 아닌 한 분야에서 발간된 모든 기록물을 수집해 디지털 아카이브로 공유하는 일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렵다.
보존할 가치가 있는 기록이나 문서를 모으는 아카이브 작업은 문화예술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이뤄진다.
부산에서는 부산문화재단이 10여 년 전부터 지역 예술가들의 작품은 물론 예술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나온 일기 사진 편지와 같은 사적 기록물, 문헌자료, 예술가의 수집품과 같은 자료를 수집하고 보존해 활용하는 예술인 아카이빙 작업을 벌인다.
부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부산문화예술 전자아카이브는 지역 문화예술인은 물론 문화예술단체, 작품 데이터베이스 등을 담고 있다.
흔히 예술가들이 생활한 공간은 지역 문화자산이자 관광자원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예술가들이 작품활동을 하며 생산한 모든 게 지역의 문화자산이 된다.단지 예술 분야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아카이브 작업은 문화적 토양을 살찌우는 일이다.
부산문화예술 전자아카이브 홈페이지의 머리말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한다.
‘부산 문화예술의 어제와 오늘을 기록하여, 내일을 만드는 밑거름이 되고자 합니다’.
방대한 자료가 축적된 한국산악아카이브도 마찬가지다.
어려운 시기 우리 국토 곳곳의 자연과 역사를 살펴본 국토 순례의 기록부터 국가적인 응원과 후원에 힘입어 달성한 에베레스트 초등정의 위업, 시민에게 도전과 자연사랑의 정신을 전해준 지역 산악 운동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산악 활동은 전문 산악인만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다.
산악 활동의 어제와 오늘을 기록한 아카이브는 관련한 내일의 저술과 연구 등 풍성한 2차 콘텐츠 생산의 밑거름이 되리라 본다.
그 결실은 또다시 공공의 자산이 될 것이다.이진규 편집국 부국장 ...
이 뉴스, 어떠셨어요?
탭 한 번으로 반응 · 로그인 불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