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꽃시장에서 떠올린 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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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7월이다.
지난봄부터 초여름까지 부모님과 함께 강화도 정원에 심은 꽃과 허브들 중에는 이미 한차례 피고 진 것도, 아직 꿋꿋이 새 잎을 내는 것도 있다. 여러해살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강화도 산속 우리 집 마당의 매서운 겨울을 견딜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이 꽃들 중 일부는 내년 봄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벌써 또 다른 정원을 그린다. 내년에는 어느 자리에 무엇을 심을지, 올해 너무 그늘졌던 곳에는 어떤 꽃이 좋을지 생각한다. 정원은 완성되는 장소라기보다 계속 다시 상상되는 장소에 가깝다. 봄과 초여름 내내 꽃을 사고, 한여름을 앞둔 지금은 그 꽃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배운다.
그럴 때마다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의 첫 문장이 떠오른다.
댈러웨이 부인은 꽃을 직접 사 오겠다고 했다.
문학사에 너무나 유명한 이 첫 문장은 아주 평범한 장면처럼 보인다. 한 여성이 그날 저녁 파티에 쓸 꽃을 사러 나가겠다고 말한다. 그것뿐이다. 그러나 울프는 이 단순한 문장에서 시작해,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법으로 한 사람의 하루에 생애 전체를 겹쳐 넣는다.
런던의 꽃 시장에서 떠올린 문장
내가 꽃집 앞에서 〈댈러웨이 부인〉을 떠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영국에 살던 시절, 나는 컬럼비아 로드 플라워 마켓에 나가곤 했다. 꽃과 과일, 빵과 오래된 물건이 뒤섞인 골목을 걸을 때마다 문득 클라리사의 첫 문장이 떠올랐다. 도시의 소음과 공원의 초록 사이로 꽃을 사러 걸어 들어가던 한 여자의 발걸음을.
그때 나는 시장을 걷고, 꽃을 보고, 어디에도 꼭 필요하지 않은 작은 것들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꽃을 사든 사지 않든, 그 앞에 잠시 머무는 것만으로 하루가 조금 달라졌다. 그것은 낯선 도시에서 나를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는 방법이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지금 나는 부모님과 함께 꽃과 나무를 보러 다닌다. 양재동, 과천, 파주, 그리고 강화까지. 계절이 바뀔 무렵이면 들르는 단골 꽃집과 나무 가게들이 있다. 한때 런던에서 혼자 상상하던 댈러웨이 부인의 발걸음이, 이제는 부모님과 함께 우리 정원을 위해 꽃을 고르는 나의 발걸음으로 이어진 셈이다.
부모님과 함께 떠나는 꽃 쇼핑
꽃 피는 철이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꽃집으로 향한다. 꼭 사야 할 것이 정해진 날보다 아무것도 정하지 않고 떠나는 날이 더 많다. 그래도 꽃과 나무 앞에서는 늘 계획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인다. 라벤더 앞에서 발길을 멈추고, 자두나무를 심을까 고민하고, 이름 모를 작은 꽃의 색을 오래 들여다본다.
"이건 마당에 심으면 좋겠다."
"저건 화분에 두면 예쁘겠다."
이런 말을 주고받다 보면 어느새 손에는 작은 화분이 들려 있고, 차 트렁크에는 묘목과 꽃이 가득 실린다. 집에 돌아와 어디에 심을지 의논하는 동안, 계절은 달력 속 숫자가 아니라 손에 묻은 흙과 잎의 냄새로 성큼 다가온다. 나는 가끔 그 시간을 '꽃 쇼핑'이라 부른다. 우리는 꽃을 사러 가지만, 사실은 지나가는 계절을 함께 붙잡으러 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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